이석기의 말을 종합해 보자. “애국가는 국가로 정해진 바 없다... 종북(從北)보다 종미(從美)가 문제다... 북한하고 친해지는 게 뭐가 나쁘냐... 유물론에 따르면 모든 게 변하는데... 종북 논란은 시대착오... ”

 

이석기는 왜 이러는 걸까? 한 마디로, 금기(禁忌)를 깨는 효과를 노린 측면이 있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란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이용해 자유민주주의 영토 안에 반(反)자유민주주의 거점을 공연화(公然化) 시키고 합법화 시키겠다는 노림수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도 국가로서 존속하려면 ‘넘어선 안 되는 선’을 그어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도 그 최후의 마지노선이 있다. 이것을 깨려는 세력은 지금까지 지하에서 위장하고 준동해왔다. “네 노선이 뭐냐?”고 물으면 그들은 “우리는 민족 민주 자주 평화를 지향할 뿐인데 왜 시비냐?”고 응수했다. 진짜 속내를 전부 또는 반쯤 감추고 활동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그 마지막 금기의 장벽마저 돌파하려 한다. 언제까지 그 장벽 직전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만한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금기에 속하는 말도 자꾸만 해 버릇하면 점차 익숙한 말로 받아들여진다”는 인간심리 일반의 속성에 파고들고 있다.

 

내버려 두면 그들의 심리전은 효과를 발휘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 나라엔 이미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이라고 한 국제조사단의 판정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대중이 20%대에 달해 있지 않은가?

이런 토양에서 “북한과 친해지는 게 뭐가 나쁘냐? 애국가가 무슨 국가냐?”고 일단 말해 버렸는데도 체제로부터 아무런 대항력이 나오지 않으면 대중은 점차 “어, 그런가?” 하다가“ ”아, 그렇구나“ 하는 쪽으로 슬슬 옮아 갈 수 있다. ”도둑질 하지 말라“고 10계명이 명했지만, 누가 작심하고 ”혁명가의 자금 마련 도둑질은 해도 좋다“고 선언해 버리면 그 율법은 결국 금이 가기 시작하더라는 경험법칙을 저들은 십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저들의 심리전이 주효할 경우 그것은 ‘애국가 영토’ 안의 ‘비(非)애국가’ ‘반(反)애국가’ 영역이 그만큼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역은 처음엔 표법 무늬처럼 생긴다. 그러나 그 무늬들이 점차 합치면 그것은 표범 무늬가 아니라 영토분활, 분활점령이 되고 급기야는 다 먹어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적어도 대중심리 차원에서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머리를 훔쳐가는 게 다름 아닌 혁명이다. 폭력혁명만이 혁명이 아니다.

 

이석기 일당은 그런 계산된 전략적, 전술적 동기를 가지고 작심하고 나오고 있다. 언론과 국민이 지금은 처음이라 놀랐다고 하지만 그게 계속 뇌리와 귓전을 때리다 보면 나중엔 ‘놀랄 것도 없는 소리’로 들리게 될 것이다. 이게 만성화 효과다. 오죽하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주인공이 처음엔 빅 브러더에 역심을 품었다가 나중엔 “그는 빅 브러더를 사랑하고 있었다”로 바뀌었을까?

이석기 일당이 저렇게 나오는 까닭이 뭐냐, 그들의 노림수가 뭐냐고 묻는 말들이 많다. 물론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저들의 마지노선 돌파 작전, 최후의 금기마저 깨려는 작전, 합법화 작전이란 각도에서 분석해 보는 것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류근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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