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라클리어 미국 차기 태평양군사령관 지명자는 1월 9일(현지시간) "북한은 미국과 동맹국,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으로, 최근의 리더십 변화로 그런 우려가 가중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라클리어 지명자는 이날 상원 군사위 인준 청문회에서 김정일 사망에 따른 북한 권력승계와 관련, "(북한의) 정책결정 과정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미 태평양군 사령부의 최대 도전과제로 북한을 지목하면서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 확산 행위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인 권력승계가 역내 안보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거준비에 함몰된 정치권은 리클리어 지명자의 경고를 가볍게 넘기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는 집권할 경우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한미동맹을 폐기하겠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북한의 위협을 조금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긴 한명숙의 행적으로 미루어 그의 뇌리에 북한의 “위협”이란 인식 자체가 들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북한과 이란은 도발로 연명하는 “독사”

인간에게는 어떤 현상을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본성이 있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앞두고 자주 이 함정에 빠진다. 투자자들은 금융시장이 붕괴될 때 그런 반응을 보인다. 사회심리학자 자레드 다이어몬드는 2005년에 쓴 저서 “붕괴”(Collapse)에서 이 현상을 “설마심리”(black swans theory)로 정의했다. 백조는 흔하지만 흑조는 희귀한 조류이다. 마치 흑조가 자주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 하는 희망적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는 거대한 댐 밑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왕왕 반직관적 인식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무려면 댐이 무너지기야 하겠느냐 하는 요행을 바라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흥미로운 것은 댐 바로 아래 사는 사람들보다 댐에서 약간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댐 붕괴를 더 걱정한다는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의 한 대목은 북한과 이란을 도발로 연명하는 “독사”로 표현하면서 독사의 머리를 절단할 순간이 왔다고 강조했다. 북한과 이란은 순식간에 미 외교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떠올랐다. 적의 소재를 알 수 없는 테러와의 전쟁과는 달리 “악의 축” 국가들의 핵 위협은 가시적이고 현재적이다.

히틀러는 1933년 총통에 취임하자마자 바이마르 공화국을 “제3제국”으로 개명했다. 그의 야망은 유럽을 나치 지배하에 통합하는 “제3의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 때 강대국들과 국제연맹이 그의 야욕을 저지했더라면 폴란드 침공도, 2차 대전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으로 유럽에서만 학살된 유대인 600만을 포함하여 1,700만 명, 2차 대전 전체적으로는 7,000만 명이 죽었다.

21세기 형 아마겟돈의 망령이 지금 이란과 북한에서 굼틀거린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끈질긴 만류를 거부하고 기어코 핵 개발의 길로 들어섰다. 아마디네자드가 히틀러처럼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미국과 국제사회의 판단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아무래도 오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란이 핵을 보유하면 이스라엘의 생존권은 위태로워진다. 이스라엘은 이 문제에 거의 생사를 걸고 있으나 오바마는 이스라엘처럼 다급한 표정은 아니다.

그는 가급적 많은 국가들과 함께 이란을 제재하는 묘수를 찾으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란의 태도는 강경해진다. 이란은 대략 1~-3년 안에 폭탄을 보유할 전망이다. 미국은 2007년 말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하고 우물쭈물 시간을 낭비했다. 다행히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의 속내를 간파하고 고삐를 죄고 있으나 이란의 핵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괴멸될 경우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스라엘, 이란 선제공격 할 수도

이란은 알고 있다. 오바마의 제재가 실현될 가능성도 없거니와 설사 된다 하더라도 별 게 아니라고 본다. 속이 타는 쪽은 이스라엘이다. 이란의 핵 보유가 확실해지는 순간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오바마는 이스라엘을 적극 만류한다. 이란의 핵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형국은 1930년대 히틀러의 위협을 놓고 오간 설전과 유사하다. 말하자면 비대칭적이다. 오바마는 속으로는 이란을 한방 갈기고 싶으나 신의 가호를 확신하는 이란이 이에 움찔하지 않을 경우 대책이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각에서는 미국의 우유부단이 못마땅하다. 1938년 체코가 나치의 침공을 예고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묵살했다. 그로부터 6개월도 안 돼 체코는 나치의 군화 발에 짓밟혔다.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당시의 체코 총리처럼 주변국의 우둔을 보고만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동의 없이 이란에 선제공격을 할지의 여부는 군사적 판단에 달렸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 국제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겠지만 그렇다고 이란이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생각은 다르다. 이란의 선제공격을 받으면 이스라엘의 존립은 끝장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네탄야후는 생존권 차원에서 단안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을 알리는 초침은 계속 돌고 있다.

한반도의 상황에서 이스라엘, 이란, 미국이 연출하는 게임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반도에서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주인공이다. 북한은 툭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한다. 이명박 정부와 미국은 북한의 모든 군사적 도전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다르다. 설마하니 21세기 대명천지에 또 다른 6.25가 있겠느냐는 낙관론은 오히려 이율배반적인 불안을 준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오바마 식이 아니라 이스라엘 식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절박하다.
조홍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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