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은 최근 당 정강정책을 대폭 개정한 것을 두고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새 정강정책에 종전 시장중심의 경제체제를 정부 개입을 확대하는 경제민주화조항을 새로 넣고 성장 중심의 가치관을 복지와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두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재벌들이 골목상인들 몫인 빵집과 커피점까지 운영하는 잘못된 기업문화를 개선하기위해 정부개입 범위를 상당부분 늘리는 것은 필요할지 모른다. 또 야당이 보편적 복지를 들고 나오고 경제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편에 ‘생애 맞춤형 복지’를 통해 저소득층에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인권 개선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번의 대북정책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시대정신에 역행하고 반역사적이기까지 하다.

비대위는 ‘유연한 대북정책’을 기조로 내세웠다. ‘유연하다’는 것은 방법론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이지, 목표와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새로 발표된 정강 정책에는 목표와 방향성이 모호하게 되어 버렸다. 종전의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원내지  촉진토록 노력하며, 북한 주민의 인권증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한다’에서 ‘개혁촉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한다’는 부분은 삭제해 버렸다. 인권개선도 ‘동포애적 차원의 인도적 지원’으로 사실상 한정함으로써 북한인권의 본질적 문제는 회피했다.

우리 대북정책의 근본목적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오도록 유도하고 인권개선 등을 통해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그런데 북한의 내부적 개혁 없이 어떻게 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는 지, 정치범 수용소 납북자문제 등 인권문제의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고 쌀이나 생필품을 지원하는 것을 가지고 북한주민들의 인권이 개선되기는 어렵다. 또 수령독제체제를 자유민주체제로 바꾸지 않으면 북한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바꾸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한쪽의 변화를 유도하기위해서는 협력도 있어야 하지만 대립과 충돌이 불가피한데도 그 부분을 눈감아 버리면 북한이 하자고 하는데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으로의 회귀나 다름없다. 이들 두정부는 민감한 남북문제에 부닥치면 남북관계의 ‘특수성’, 쉽게 말해 북한 눈치를 보기 위해 뒤로 숨어버렸다. 2003년부터 유엔인권위는 매년 북한인권 개선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첫 해엔 불참했고 2004년과 2005년은 기권했으며 찬성으로 돌아선 것은 2006년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해 촉구결의안 채택에 앞장서고 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불참하거나 기권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체면만 구겼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오래전에 북한인권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정작 당사국인 우리국회에 상정된 북한인권법은 6년째 잠자고 있다.

김-노 두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지원을 통해 변화를 유도한다며 수십억 달러의 지원을 통해 두 차례의 정상회담까지 했으나 지금 이 시점에 북한이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북한에 대해 우리의 정체성을 얼마나 지키느냐에 달려 있는 데 한나라당의 이번 정강정책은 과거처럼 국가정체성은 잃고 ‘퍼주기’로 일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도준호 본사대표(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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