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결산한 ‘한중공동언론발표문’은 양국 수뇌 간에 논의한 남북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 발표했다.

“남북 양측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여 최종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실현 할 것을 지지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필자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은 세습체제 등장 이후의 남북관계와 향후 대책에 대해 깊은 논의를 했다”고 한 보도매체들의 보도와 “특히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이 1시간 반의 만찬 중 한 시간이나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양국 간의 협력방안에 대해 심도 있고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는 보도에 비춰 지극히 미흡하고 원론적인 수사로 정리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환언하면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 양국 수뇌는 서로 다른 대북 정책의 속내를 주고받은데 불과하며 그렇다 할 합의 특히 북한체제의 변화, 대남정책의 전환, 특히 세계 각국이 요구하고 있는 북핵문제의 해결과 체제개혁, 대외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는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음을 반영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왜 중국의 대북정책이 그처럼 북한에 대한 지원과 배려로 일관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중국의 안전 보장 상 또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북한은 자기들 관여 하에 계속 남겨두어야 할 상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19세기 후반 청조(淸朝)가 조선조(朝鮮朝)에게 취했던 ‘속국, 자주’의 이중정책을 변화한 오늘의 한반도 정세와 국제정세에 맞추어 변형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조선조 500년의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관계를 ‘조공(朝貢)과 책봉(冊封)’을 통해 국가 안전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청국은 조선을 속국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1840년대에 들어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이후 1842년 난징조약, 1858년 텐진조약 등으로 중국대륙을 서구열강의 요구대로 개방하고 이권을 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청국은 서구열강의 무력시위에 꼼작 없이 굴하여 반식민지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판국에 서구 열강의 한반도에 대한 무력시위가 자행되었다. 그러니 청국이 지금까지 취해왔던 ‘조선조=속국’이란 태도를 계속 주장할 수 있었겠는가? 1866년 신미양요와 1871년 병인양요를 준비하던 프랑스와 미국이 청국 조정에게 사전 의견을 문의하자 청국은 “조선은 속국이기는 하지만 내정외교는 자주이므로 우리가 무력간섭을 하라, 하지 말라 말할 수 없다”고 답했던 것이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청국이 정작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사건이 조선 내부에서 발생하자 가차 없이 무력을 동원하여 ‘속국의 저항’을 진압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이나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청국은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여 대원군을 체포하여 텐진에 유폐하는가하면 김옥균의 개화당의 쿠데타를 무력 진압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를 회고할 때 지금 중국이 북한에게 취하고 있는 정책이 청국의 대조선 정책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지금부터 5~6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일본과 중국 간의 ‘비공개 전략 대화 자료’를 읽은 바 있다. 이 자료에 실린 중국 측 참가자들은 모두 중국의 대외정책과 군사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민간대학 교수 또는 현역 고위 군 장교들이었다. 한 중국 참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일본은 중국의 조선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조선반도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일본과 그 동맹국은 조선반도에 있어서의 중국의 이익을 위해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쌍방은 전략적 입장에서 협조해야 한다. 일본은 일미 안보체제에만 의존하고 미국과의 양국 군사관계만 유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에 있어서 일본의 선택지가 적어지며 기대하는 안전유지 역할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전략적 변화에 따라 중국은 더욱 전향적인 국제 또는 지역 안전 시스템에 가담할 것이다. 중 일 미 러 한 북한 등 나라들이 참가하는 동북아시아의 다국간 안전 메카니즘이 형성 된다면 중국과 일본은 그 안에서 그 나름대로의 안전이익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 북한 정권이 위험에 처할 경우 중국은 1961년에 체결한 ‘북 중 우호협력 상호 원조 조약’에 따라 합당한 군사지원 나아가 군사개입에 나설 것임을 암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주변국의 어떠한 시도에도 중국은 동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적극 행동할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작년 9월 필자는 서울에서 그때 본 글보다 더욱 명백하게 대한반도 정책과 대북정책을 말하는 중국 학자를 만났다.

중국의 유명한 베이징 대학교 국제 대학원 교수인 주펑씨는 우리나라 관련 안보관계 연구소가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반도는 중국 국가안보의 ‘관문’이라는 관념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에게 있어서 절대 바뀌어 본적이 없으며 미래에도 결코 바뀔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사안의 미래 진전에 있어서 중국의 이익과 주장이 ‘무시’당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때문에 1961년 ‘중부전략(북-중 방위조약)’의 현실성을 완전히 상실 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필자는 이 말을 들으면서 주펑 교수 자신이 누차 “중국이 냉전시대의 중북동맹 의무를 지는 것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지만 “과연 북한 정권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할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오늘의 중국이 북한은 19세기 청조 때처럼 ‘속국 자주’의 이중 잣대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에서 긴급사태가 일어났을 때(조선조 때의 임오군란이나 갑신정변처럼) 중국이 못 본 채 방관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평 교수의 말대로 북한 정권이 중국의 안보와 이익을 결정적으로 해칠 경우 또는 한미 양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으로 북상해올 경우 또는 어떤 사건이 중국의 안전보장과 국가이익에 결정적 위해로 된다고 판단할 경우 중국은 필요한 수단(정치-군사적 개입까지 포함하는)을 취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민들이 북한의 핵개발을 찬성한다거나, 개혁 개방을 거부하여 소비에트식 사회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려는 북한 지배자들의 행위에 찬동하고 있다고는 보질 않는다.

그렇다면 중국은 수백만의 북한인민을 굶어죽이면서 핵-미사일 개발에 전념하는 북한 당국자의 반인민적 반혁명적 정치노선에 대해서는 명백한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는가?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과 미국은 북한을 흡수통일하자거나, 김정은 세습체제가 굳어지기 전에 ‘김씨 왕조’를 무력으로 붕괴시켜야 한다거나,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무력으로 핵시설을 파괴시키거나 하는 초강경전략을 준비하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중국도 북한에 대해 누구나 공인하고 있는 잘못-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라고 경고해야 하며,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한국의 요구는 이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방문에서 중국이 보인 태도는 결코 우리 국민의 지지를 받을 행동이 아니었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강인덕 본사 고문<일본 성학원대학 종합연구소 객원교수,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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