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북한은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의 관영매체를 통해 2012년도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습니다. 이 신년사는 북한이 매년 정초에 국내 및 대외를 향해 자신들의 정책포부와 방향을 선포하는 것이 때문에,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매년 표현들을 대조하면서 의도를 분석하곤 합니다.

올해의 신년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별세하고 장례를 치른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우리 모두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분석 결과 올해 신년사는 다음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예상대로 지속성과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 장례식에서 영구차를 호위했던 핵심 실세들의 면면을 보면서, 김정은의 신지도부가 개혁개방보다는 체제 이어가기와 단속에 치중할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만, 신년사 내용도 역시 그랬습니다.

김정은을 둘러싼 핵심들은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을 위시한 군부 인사가 대부분이며, 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인민국 총정치국, 노동당 조직지도부 등 체제단속을 책임진 인사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개혁개방을 통해 잃을 것이 많은 기득권층이자 특권층입니다. 신년사에서도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의 길을 끝까지 걸어 나가자”라고 독려하고 있으며,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곧 위대한 김정일 동지이시다”라는 표현에서 보듯 김정일과 김정은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즉, 성공적인 권력승계에 승부를 걸면서 체제의 지속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역시 예상했던 대로, 권력공백으로 인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신년사는 군을 ‘선군혁명의 기둥이자 주력군이며 강성국가 건설의 돌격대’로 치켜세우면서, 군의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한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군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김정은 동지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며 천만 자루의 총, 천만 개의 폭탄이 되여 결사옹위하자” 등 선동적인 표현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한 ‘부대지휘관리 강화’ ‘군기 세우기’ ‘강철 같은 군사 규율’ 등을 강조하는데서 보듯, 체제수호의 절대수단인 군을 장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평양시의 면모를 일신하는 것은 어버이수령님 탄생 100돌을 성대히 맞이하기 위한 장군님의 간곡한 유훈”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대목은 평양 이외 지역의 민심을 추스르기 위한 선전인 듯합니다. 청년동맹조직들과 여맹조직들의 활동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주민 불만을 최소화하고 체제안정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 12월 30일 국방위원회 명의로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는다”고 험구를 내뱉은 것에도 권력공백기 동안의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수세적 허세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처 입은 맹수가 불안감으로 잔뜩 웅크린 채 주변을 향해 건드리지 말라며 으르렁 거리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대목입니다.

셋째, 열악한 경제현실을 인정하고 주민을 독려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합니다. 2010년과 2011년  신년사에는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이 16회 및 19회나 사용되었지만, 이번에는 5회로 급감했고, ‘강성대국’이라는 표현도 ‘강성국가’ 또는 ‘강성부흥’이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지난 신년사에서 사용되었던 경제부분의 선전성 표현들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번 신년사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를 푸는 것은 강성국가건설의 초미의 문제이다”라고 인정하고 있으며, 경공업. 농업, 기초공업, 전력생산, 철도수송 능력제고 등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즉, 그동안 엄청나게 선전해온 2012년 강성대국 원년 행사를 앞두고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표현의 수위를 낮추는 모습니다.

넷째,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당분간 강경한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의도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2010년 신년사에서는 "북남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 나가자"는 표현이 있었고, 2011년에는 "대화와 협력을 적극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표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적대적인 표현들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대국상을 외면하고 조의표시를 방해하는 남조선 역적패당’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일단은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우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반복 강조하는 부분은 한국정치에 개입하여 남남갈등을 조장하겠다는 의도를 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약컨대, 북한의 2012년 신년사는 권력공백으로 비롯된 체제불안과 함께 선군정치 지속을 통한 체제단속, 개혁개방 거부, 대남 강경기조 등을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그들이 쏟아내는 표현이나 비난에 개의치 않고 일단은 관계개선을 위한 문을 열어둘 필요가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 차원을 넘어 북한의 변화를 선도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간다는 큰 포석을 가지고 담담하게 임해야 할 것입니다.
김태우 통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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