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우리 정부의 고위관계자와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장미 빛 기대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김정은 새 권력이 김정일과는 달리 남한을 상대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으므로 새 지도부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기대감 표출이었다. 지난 21일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우리가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조문도 안 해서 북한을 크게 자극했고, 이 후 상황을 푸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이 번에는 후계체제가 안착될 때 까지 굳이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며 대북 유화론을 폈다.

실제 우리 정부는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기를 바란다는 등 조의를 간접으로 표명하였고 휴전선에 걸친 4개의 크리스마스 등탑 점등도 보류하였다. 또한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크나 큰 기대도 표명하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의 새 해 신년사도 통상적으로 1월1일 발표해왔던 날자를 하루 뒤인 2일로 미뤘다. 1일 발표될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 내용을 지켜 본 다음 그에 맞춰 화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이 남한을 상대로 화해협력의 운을 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매우 경박한 조처였다. 그동안 잠잠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 유화론이 다시 김정일 사망으로 고개 들기 시작한 셈이다. 신(新)유화론의 등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뉴스파인더’ 12월27일자 칼럼을 통해 ‘김정은 권력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아직 이르다.’며 ‘조속한 안정’ 보다는 ‘조속한 붕괴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은 필자가 우려했던대로 대남 호전성으로 일관하였다. 신유화론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더 호전적이며 도발적인 내용을 담았다. 

한 해 북한의 정책 방향을 담는 신년 공도사설은 남한 정부가 김정일 조문을 방해하였다며 ‘남조선 역적패당의 반인륜적, 반민족적 행위는 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와 규탄을 불러일으켰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작년의 신년 공동사설만 해도 남북한  의 ‘대화와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뿐만 아니라 올 신년 공동사설은 2008년 이 후 언급하지 않았던 주한미군 철수도 다시 꺼내들고 나섰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김정일 권력은 지난 30일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며 ‘역적패당을 끝까지 따라가 씨도 없이 태워버리는 복수의 불바다가 될 것이다.’고 협박하였다. 김정은은 새 해 첫날 ‘근위서울  경수 제105탱크사단’을 방문, 호전성을 과시하였다. 제105탱크사단은 6.25 기습남침 때 서울에 가장 먼저 진입한 탱크사단으로서 김정일이 매년 1월1일을 전 후해 이 부대를 찾아가 서울 적화의 위업을 상기시키곤 했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 고위관계와 신유화론자들의 기대는 닭 쫓던 개 모양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목마르게 희원(希願)했던 김정은의 대남 유화 제스쳐는 간데 없고 도리어 더 악랄해졌을 따름이다. “남북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짜겠다던 꿈은 일장춘몽으로 날아갔다. 정부 고위관계자와 신유화론자들의 철저한 오판은 북한을 너무 몰랐던데 기인하였다.

”남북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짤 생각보다는 김정은에 대해 ”처음부터 새롭게“ 분석해야 한다. 동시에 남북관계 책임자들의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 김정일은 죽었지만 그의 유훈통치는 살아있음을 명심,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함을 강조해 둔다.
정용석 논설고문<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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