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주 1).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