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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대입 수험생 모집의 수시모집에 대한 간략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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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rcola
등록일
2016-10-08 12:52:37
조회수
14838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대입 수험생 모집의 수시모집에 대한 간략한 의견.


수시모집은 서울지역 주요대학들(Royal대학인 성균관대 및 서강대, 그리고 비신분제 주요 대학들의 대다수)이 정시보다 그 인원에 있어, 모집인원에 큰 비중을 두는 선발방식인데, 그 해당 자료가 쌓여가야 아주 정확한 흐름이 예측될 것 같습니다.







여러 학교를 지원하도록 하여 학생들의 손해가 없고, 해당대학들이 우수하고 필요한 학생은 대학 재량권(대학의 자치권은 역사가 오래됨)으로 선발하는 제도가 현재의 수시제도로 보여집니다.




수험생의 성적, 향후 취직(대학졸업후 바로 취직할것인가, 아니면 집안사정이 부유하여 대학원.박사과정까지 공부해야 하는가등), 학생의 적성, 헌법.법률.정부자료.정부의 교과서를 통한 공교육등 다각도를 반영하여 대학을 선택하는게 좋을것입니다.







이러한 대입제도에 있어, 대학을 선택할 것 같으면, 6백년전부터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이던 성균관(성균관의 정통성은 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교육을 통하여 성균관.성균관대가 유지.계승시켜옴)같은 유서깊고 정통성있는 Royal대로 가는게 가장 좋을것입니다. 성균관대와 아울러 추천하고 싶은 대학은 교황윤허의 Royal대학인 서강대입니다.







한국의 정부체제.국가체제(국가기관.국책연구기관인 국사 편찬위의 국사 성균관 서술, 교육기구로는 성균관=성균관대)는 바뀌지 않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이며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




대중언론이나 사설 입시학원의 자료를 이용하여 매일 덤벼도 국사 성균관=성균관대(6백년 역사)가 정부의 학술적 정설(定說)이기 때문에, 성균관대의 최고(最古,最高)학벌은 바뀌지 않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서울대는 경성제대 후신으로 을사조약이 무효고(따라서 국내법 우위의 전통 법이론으로 보면 한일병합도 무효), 일본이 항복하면서 받아들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어왔습니다. 그 추종세력인 서울대.연세대.고려대도 당연히 그런 주권없고 학벌없는 일본 강점기 잔재 서울대의 추종세력.




한국의 현행헌법(1988년부터 시행)에 보장된 임시정부 법통때문에,이론상으로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강행법측면에서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습니다.







한국의 역사적.교과서적.국가적 차원의 최고(最古,最高) 대학학벌은, 조선,대한제국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미군정부터 현재까지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6백년 역사의 성균관대입니다.




한편 세계사를 저술한 것으로 판단되는[대부분 서유럽 학자들의 이름만 나옴. 이는 2차대전 이전 근대에 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역사가 그렇게 만든것 같음] 서유럽.교황청의 영향력은 지금도 세계사나 여러가지 교과서(참고서 포함).백과사전.학술서적등을 통하여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강대는 교황윤허로 대통령령에 의해 발행된 한국 민족문화대백과가 그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Royal대학은 성균관대(국사 성균관의 정통성 승계로 6백년 역사)와, 교황윤허의 서강대 뿐입니다. 다른 대학들은 비신분제 대학으로, Royal대에 대한 충성도를 보아, 개인적으로 조금씩 중용해 나가면 될것입니다.




@ 미군정기 이후의 한국정부에서 조치한 내용(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간)으로, 정부입장을 알려드립니다.




1. 정부출연 연구기관 자료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에 대한 학술적 서술내용.

1).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설명.

가. 한국학 중앙연구원(韓國學 中央硏究院).

한국문화 및 한국학 제분야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는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의 설명자료임.

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韓國民族文化 大百科辭典).

........
발간된 경위를 보면, 1979년 9월 25일 대통령령 제 9628호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였고, 동 규정에 근거하여 1980년 3월 18일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편찬사업 담당부서를 두었으며, 1980년 4월 10일 제 1차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12년의 기간동안 3백여명의 편집진과 3천 8백여명의 집필자가 참여하였다.





2).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이칭별칭

성균관대, 성대
•유형

단체
•시대

현대
•성격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설립일시

1398년
•설립자

김창숙(金昌淑)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개설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 7)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에서 시작된다.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연원 및 변천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성균관에 설치된 3년제 경학과(經學科)가 성균관대학교의 근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시작이다. 성균관은 제향 기능을, 경학과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여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역사학·지리학·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그 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 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권상실 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經學院)으로 개편되어,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주로 문묘(文廟)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

1930년 경학원에 로 교명을 회복하였다.

1946년 유림대회(儒林大會)가 개최되어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기성회가 조직되고 독지가 이석구(李錫九)가 재단법인 학린사(學隣舍)의 토지를 희사하였다. 이에 김창숙(金昌淑)의 주도로 종전의 명륜전문학교의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김창숙이 취임하였다.

1953년 2월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승격되어 문리과대학·법정대학·약학대학의 3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의 편제를 갖추었고, 같은 해 6월 각 도의 향교재단(鄕校財團)에서 재산을 기부함에 따라 재단법인을 성균관으로 확대해 개편하였다.

1958년 야간대학을 설치하였으며, 1963년 재단법인을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개편하였다. 1965년 삼성문화재단이 대학의 운영권을 인수하였다가 1979년 1월 다시 봉명재단(鳳鳴財團)이 학교의 운영을 맡게 되었고, 경기도 수원시 천천동에 자연과학캠퍼스을 신축하였다.

1981년 8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이과대학·공과대학·농과대학·약학대학 등을 설치하였고, 같은 해 11월 교육대학원을 신설하였다. 1983년 11월 경영행정대학원을 경영대학원과 행정대학원으로 분리하고, 1987년 11월 유학대학원, 1990년 2월 산업과학대학원을 신설하였다.

1997년 3월 의과대학, 9월 의학연구소, 10월 디자인대학원, 12월 경영대학원을 신설하였으며, 1998년 1월 건학 600주년 공식기 게양 및 현판 제막식 행사를 거행하고, 도봉선수촌 신관을 준공하였다. 같은 해 4월 북한 고려성균관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고, 6월 교수업적 평가제를 도입하였으며. 8월 도서관 100만 장서 확보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9월에는 건학 6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기념행사로 세계총장학술회의, 조선시대 성균관 재현행사, 동양학 학술회의, 연극공연, KBS 열린음악회 등을 개최하고, 『성균관대학교 600년사』를 발간하였다. 1999년 3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의과대학 건물을 준공하고, 5월 법학도서관을 개관하였다....










.출처:성균관대학교[SUNGKYUNKWAN University, 成均館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출판사들이 편찬하는 백과사전류에 나타난 성균관대학교에 대한 학술적 서술내용들.

1). 두산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成均館大學校






•사립

•특성
종합대학

•개교일
1398년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인문사회과학캠퍼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자연과학캠퍼스)

•교목
은행나무

•면적(㎡)
627,025

•홈페이지
www.skku.ac.kr





성균관은 고려 때부터 있었지만 조선 개국 후 1398년(조선 태조 7)에 현 명륜동 캠퍼스에 설립된 국립 최고학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칙령으로 3년제 경학과(經學科)를 설치한 것이 그 시초이다. 경학과는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하되 역사·지리·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을 부과하여 근대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국권피탈 후 일제의 탄압으로 교육기능을 박탈당하고 경학원(經學院)으로 축소되었다. 1930년 민족의 교육열 고조로 일제는 부득이 명륜학원을 설립하였고, 1939년 명륜전문학교로 승격시켰다.

8.15광복이 되자 1946년 재단법인(현재는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정규 단과대학으로 발족하였으며, 초대학장으로 김창숙(金昌淑)이 취임하였다. 교훈은 인·의·예·지이다.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1979년 수원에 자연과학캠퍼스를 신축하였다. 1996년 11월에 삼성재단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인수하고 운영해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하 생략....







그리고 교육학사전이나, 종교학사전, 학습사전도 성균관대가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라고 학술적의견을 가지고 있고, 성균관대와 제사기구인 성균관도 그렇게 일치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서강대는 교황윤허 대학으로 그 Royal대 역사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

1960년 2월 재단법인 한국예수회에서 서강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개교하였다. 194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Pio)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었고, 예수회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신부의 주도로 1956년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발족되면서 대학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초대 학장에 킬로렌(K. E. Killoren) 신부가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경제학과를 두었다. 1963년 독어독문학과·생물학과·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964년 국어국문학과·화학과를 설치하고 제1회 졸업생 62명을 배출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사립학교법」에 따라 재단법인 한국예수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출처:서강대학교[Sogang University, 西江大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내 Royal대학들인 성균관대나 서강대에 대한 국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세계사도 참조)등, 정부자료를 위주로,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說)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작성일:2016-10-08 12:52:37 220.72.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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