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김일성의 사망이후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권력을 다지기 위한 숙청의 피바람이 잔인하게 불어쳤다. 여기에는 대남공작원 출신들도 예외가 되지 않았다.
 
당시 북한에서는 김정일 독재집단이 구소련의 프룬제(아카데미)군사대학 출신 청산이후 지난시기 대남공작원들이 거의 남한에 전향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군 계통에서 핵심적인 위치까지 차지한 대남공작원 출신의 군 간부들도 무자비하게 청산했다.
 
90년대 중반 김정일 독재집단의 주장대로라면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 남한에 파견된 대남공작원들 중 체포되어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그런 이유로 김정일 독재집단은 대남공작원 출신의 간부들에게 의문부호를 달아놓고 그들을 모두 재조사했다.
 
그 잔인한 피바람에 대남공작원출신인 중앙당군사부장 이하일과 무력부 전투훈련국장, 제2전투훈련국장 63해상저격여단장 등 많은 사람들이 숙청됐다.
 
그러나 그 이후 한동안 사라졌던 중앙당군사부장 이하일이 공개석상에 다시 등장했다. 북한 언론 매체들의 발표에 의하면 그는 전직과 명예를 회복하고 중앙당 군사부장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소문에 의하면 숙청의 칼날 위에 올라섰던 이하일이 살아난 것은 “나는 나의 전향에 대해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께 보고하였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일의 지시로 해당 일군들이 금수당의사당에 보관되어있는 김일성의 사업일지(다이어리)를 검열한데 의하면 어느 한 일지 모퉁이에 “이하일 가짜 전향”이라는 김일성의 필체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발견되어 이하일의 가짜 전향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 후 그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와 몇 달 자기 직무에서 일하다가 “조카가 탈북 하여 남한으로 갔다”는 소문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박대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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