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때는 누구나 그랬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이럴 때 찾아온 첫사랑의 감정은 행복하면서도 낯설고, 아프다.

영화 '용순'은 첫사랑의 열병을 심하게 앓은 뒤 한 뼘 더 성장하는 사춘기 여고생 용순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조미료를 넣지 않은 듯 전체적으로 담백하면서도, 뜨거운 여름날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청량감을 준다.

캐릭터마다 생생한 개성이 살아있는 데다, 주인공 용순을 비롯해 영화 속 여성들이 능동적이고 현실감 있게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 '용순'[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충청도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열여덟 살 용순(이수경 분)은 육상부 담당 '체육'(박근록 분)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체육이 같은 학교 교사인 '영어'(최여진 분)와 교제를 시작하자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행동에 나선다.

용순은 당당하다 못해 당돌하다. 어린 시절 옛 애인을 따라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아픈 기억을 지닌 그는 자신의 사랑만큼은 지키려 한다. 그래서 체육에 집착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무모하리만큼 앞뒤를 재지 않고 덤비는 용순의 모습은 투박하고 서툴러서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런 용순 곁을 지키는 것은 친구들이다. '난 항생 네 편'이라고 응원해주는 친구 문희(장햇살 분), 용순을 짝사랑하면서도 용순의 첫사랑이 이뤄질 수 있게 돕는 '빡큐'(김동영 분)가 그들이다. 셋이 똘똘 뭉쳐 다니며 엉뚱한 사고를 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결정적인 순간 딸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용순의 몽골인 새엄마, 제자에게 남자를 빼앗길 상황에 놓이자 체벌도 마다치 않는 영어 교사까지, 공감이 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유일하게 우유부단한 인물은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체육뿐이다.

늘 땅만 보고 달리던 용순은 한바탕 사랑의 홍역을 치른 뒤 마침내 고개를 들고 앞을 보며 달릴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여고생과 교사의 사랑이라는 설정이지만,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은 전혀 없다.

영화 '차이나 타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등에 출연한 배우 이수경이 사춘기 소녀의 섬세한 감성을 살려 연기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신준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자 영화 '우리들'을 만든 제작사 아토의 두 번째 작품이다. 6월 8일 개봉.(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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