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 기자] 태풍'차바'의 영향으로 새벽부터 거센 비바람에 사나운 날씨가 이어졌던 지난 5일 아침, 청주시 상당구에서 홀로 사는 김모(63)씨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13㎡ 남짓한 방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듯이 확인했다. 

 

열기가 사그라든 방바닥을 매만지며 연탄 갈 시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김씨는 연탄을 때기 시작했다.

김씨가 사는 달동네는 도심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10월에 접어들면 제법 쌀쌀하다. 허름하고 낡은 집에 찬바람까지 들이치는 터라 밤은 물론 낮에도 연탄 없이는 견디기 어렵다. 

10년째 그의 심신을 괴롭혀온 당뇨와 고질적인 무릎 통증 탓에 가을의 쌀쌀함도 견디기 힘들다.

일찌감치 털 달린 보온바지를 장롱에서 꺼내 입어야 겨우 견뎌낼 수 있는 처지다. 

창고에 쌓아놓은 연탄은 김씨가 한파 몰아치는 겨울을 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작은 창고에 쌓아놓은 200여장의 연탄 덕에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이웃집에서 빌려온 연탄이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연탄 쿠폰을 받으면 돌려줘야 한다. 올겨울 나기가 벌써 막막하고,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에서 가스나 기름보일러를 무료로 설치해준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는 탓에 그에게는 꿈 같이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 정부에서 받는 40만원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를 해결해야 처지라 그로서는 저렴한 연탄이 유일한 겨울 난방책이다.

김씨는 "보일러를 설치해준다고 하지만 기름이나 가스가 비싸 그림의 떡"이라며 "서민들에게는 연탄이 겨울을 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저소득층 연탄 사용자에게 매년 도움의 손길을 내민 단체가 연탄은행이다. 

2002년부터 전국 31개 지역 5만 가구에 한 해 750만 장의 연탄을 지원해오고 있다. 

충북에서도 2009년부터 충북연탄은행이 꾸준하게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수년간 계속된 경제 한파 속에서도 온정의 손길이 모이면서 지난해에는 충북연탄은행이 목표로 삼은 연탄 10만장 지원 기록을 훌쩍 뛰어넘어 15만4천704장(774가정)을 전달했다. 

9만6천625장(484가정)을 전달한 2014년보다도 60.1%나 증가한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려는 온정의 손길이 막판에 몰리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충북연탄은행 관계자는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며 벌써부터 걱정이 크다. 

가뜩이나 위축된 경기에 후원금이 줄 수 있고, 게다가 7년만에 연탄 가격까지 인상되면서 민간단체의 연탄 후원 물량이 예년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개당 373.5원(고시가격)하던 연탄 가격을 446.75원으로 19.6% 인상하는 내용의 '무연탄·연탄의 최고판매가격 지정에 관한 고시'를 개정 고시했다. 2009년 이후 동결되다 7년만에 인상됐다.

유통비를 포함한 소비자 가격은 500원에서 573원으로 14.6% 오른다.

정부는 연탄값 인상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저소득층(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계층, 소외계층 등)에게 지급하는 연탄쿠폰 지원금액을 기존 16만9천원에서 23만5천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저소득층이 겨울을 나는데는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인상된 가격을 기준으로 할 때 정부 지원금으로 구매 가능한 연탄은 대략 400여장이다. 

기존보다 60∼70장을 더 살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가구당 겨울철 연탄 사용량이 평균 820장인 점을 고려하면 정부 지원금으로는 겨울철 연탄 사용량의 절반가량만 장만할 수 있다는 게 연탄은행의 분석했다. 

연탄은행 허기복 대표는 "10월부터 7개월 동안 1가구가 적게는 800장∼많게는 1천500장을 사용하는 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쿠폰으로는 400여장 정도밖에 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민간단체가 후원을 받아 저소득층 가정의 연탄 부족분을 해결했지만 가격 인상 여파로 후원금이 더 늘지 않는 이상 예전과 동일한 물량의 연탄을 지원하기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연탄은행 신미애 사무국장은 "후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열악한 지방 연탄은행들의 어려움은 수도권보다 더 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충북연탄은행 창고에 쌓여있는 연탄은 1천600장에 불과했다. 그나마 모두 공장에서 외상으로 들여온 물량이다. 

지난해에는 연말 후원금이 몰리면서 외상으로 빌린 연탄을 가까스로 갚았지만, 올해는 가격 인상 여파로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충북연탄은행 김점용 목사는 "오는 8일 연탄은행 재개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내년 4월까지 소외계층에 10만장의 연탄을 배달할 계획"이라며 "경기 한파와 연탄값 인상으로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 같아 고민"이라고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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