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 기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이 임박했다. 

정신적 문제 탓에 신 총괄회장의 판단·사무처리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으로, 현재 치열하게 전개되는 신동주·동빈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동안 "아버지(신격호) 뜻"이라며 승계의 당위성을 주장한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당장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光潤社·고준샤) 대표·최대주주 자리를 뺏기고, '독점'해온 신격호 총괄회장의 신병도 넘겨야 할 처지에 놓였다. 

신동주도 아버지 치매약 복용 인정…후견 개시 유력 

6일 오전 10시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릴 예정인 '신격호 총괄회장 성년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 관련 6차 심리에서 재판부는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한 여동생 신정숙씨 법률대리인과 후견인 지정에 반대하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법률대리인으로부터 마지막으로 의견과 자료를 취합한다. 

최종 후견 개시 여부는 이번 6차 심리가 끝나자마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판부가 1~2주안에 결정문을 당사자와 법률대리인들에게 통보하는 시점에 드러난다.

지금까지 확인된 여러 정황으로 미뤄 신격호 총괄회장의 후견인 지정이 유력하다는 게 재계와 법조계의 관측이다. 

2013년 도입된 성년후견인제는 질병·장애·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법원이 의사를 대신 결정할 적절한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로, 과거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제도를 대체한 것이다.

결국, 당사자의 '정신적 제약' 여부가 관건이라는 얘기인데, 이미 성년후견인 신청자측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치매 진료 및 관련 약물 복용 기록 등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지난 6월 말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은 멀쩡하기 때문에 후견인을 둘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던 신동주 전 부회장 측 법률대리인마저 돌연 신 총괄회장의 치매약 복용 사실을 공개하면서, 후견 개시 가능성은 더 커졌다. 

후견 대상의 정신건강 문제 정도에 따라 후견의 종류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 등으로 나뉘는데, 신 총괄회장은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에 해당한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성년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됐다고 판단될 경우, 한정후견은 같은 이유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 지정된다. 

신 총괄회장의 후견 수준이 성년후견보다 한 단계 낮은 한정후견으로 결정되더라도, 정신건강상 문제가 분명히 확인됐다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또 재산 분할 등 중요한 결정의 대부분도 후견인이 맡게 될 전망이다.

신동주, 광윤사 대표·대주주 뺏길 수도 

지난 6월 27일 5차 심리 직후 신동주 부회장측 김수창 변호사는 "(신동주·동빈 간) 경영권 분쟁과 성년후견인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성년후견인 지정돼도 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주장과 달리, 경영권 분쟁과 후견 개시는 따로 놓고 생각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후견 개시로 공인되면, 당장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지배구조 꼭대기에 있는 광윤사의 대표 및 최대주주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 지주회사격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를 보유한 롯데그룹의 뿌리이자 지배구조상 핵심 기업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그룹 경영권 차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10월 14일 광윤사는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잇따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등기 이사에서 해임하고 신동주 전 부회장을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신할 광윤사 새 대표로 선임했다. 아울러 이사회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 1주를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넘기는 거래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신동주 전 부회장은 광윤사의 과반 최대주주(50%+1 지분)이자 대표로 등극했다.

하지만 올해 1월 신동빈 회장은 "신동주 전 부회장의 광윤사 지분 획득과 대표 선임 모두 서면으로 제출된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지만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논란이 있는만큼 효력이 없다"는 취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에서의 후견 개시 사실을 참고해 일본 법원이 신동빈 회장의 손을 들어줄 경우, 신 회장은 광윤사 이사로 복귀하는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대표이사직과 과반 최대주주 지위를 모두 잃는다. 

아울러 신 전 부회장은 지주회사 롯데홀딩스 주요 주주 가운데 광윤사의 지분(28.1%)을 더 이상 확실한 우호지분으로 내세우기도 어렵게 된다. 

홀딩스 주총 표 대결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이길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낮아진다는 얘기다. 

신격호, 10개월만에 '신동주 관할' 벗어나나 

후견 개시는 '신격호 총괄회장을 누가 보필하느냐', '누가 신 총괄회장의 곁을 지키느냐'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수십년 동안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그룹(비서실)의 수발을 받았으나, 지난해 10월 이후로는 신동주 전 부회장과 측근들에 둘러싸여 있다.

작년 10월 16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설립한 SDJ코퍼레이션 인사들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을 찾아 자신들이 신 총괄회장을 보필하겠다고 주장하며 집무실 안팎에 자기 사람들을 배치했다. 이들은 곧이어 같은 달 19일 롯데그룹 소속 신격호 총괄회장의 비서실장 이일민 전무까지 해임했다.

이 모든 주장과 점거 행위의 근거가 된 것은 신 총괄회장의 친필 서명이 담긴 한 장의 '통고서'였다. 통고서에는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 주변에 배치해 놓은 직원들을 즉시 해산 조치하고 CCTV를 전부 철거할 것" 등의 요구 사항이 담겼다.

하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이 후견인 지정이 필요할 만큼 불안정하다면, 이 통고서의 신 총괄회장 자필 서명의 진의나 작성 과정 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원은 향후 경영권 분쟁 당사자들이 아닌 제 3자 법정 대리인에게 신 총괄회장의 신병 관리를 일임할 가능성이 있다. 

더 이상 신동주 전 부회장과 측근들이 신격호 총괄회장 곁에서 임의로 외부인과의 접촉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후견이 개시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에서 내걸 '명분' 자체를 바꿔야 할 처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연합뉴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경영권 분쟁의 해법을 묻자 "아버지(신격호 총괄회장)가 전체 롯데 그룹을 총괄하고, 내가 일본 비즈니스를 맡으면서 계속 한국 롯데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하고, 동생(신동빈 회장)은 그 자금을 받아서 한국 비즈니스를 키우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95세의, 법정후견인까지 필요한 신 총괄회장에게 다시 롯데그룹 경영 총괄역을 맡긴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졌다. 

아울러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금까지 '아버지와 나의 동반 경영 복귀'라는 같은 명분을 내세워 종업원지주회 등 홀딩스 주요 주주들과 퇴직 임직원들(올드보이·OB)에게도 지지를 호소해왔기 때문에 후견 개시 이후 이 명분과 주장을 수정하지 않으면 일본 내 우호 지분 확보 작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예상대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후견인이 지정될 경우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 큰 변수가 될 것"이라며 "여러 모로 신동빈 회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변화로, 신 회장의 우세가 굳어진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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