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 기자]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는 필리핀이 남중국해 영유권 중재 재판에서 완승을 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처지에 놓였다.

우선 판결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며 '전시태세'에 들어가고 동맹국인 미국은 중국에 판결 수용을 압박해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필리핀이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 중국군, 남중국해 훈련장면 추가 공개 무력시위

GMA 방송 등 필리핀 언론들은 1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짐을 싸 떠날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필리핀의 해양안보 전문가 제이 바통바칼은 "이번 중재사건의 현실은 일반 법원과 달리 집행수단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오 카르피오 필리핀 대법관은 "싸움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전망했다. 

채스 프리먼 전 미국 외교관은 PCA 판결을 놓고 "필리핀의 전술적 승리이자 국제법의 패배"라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판결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이번 판결로 남중국해 문제가 힘으로만 해결할 수 상황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필리핀에서는 이번 판결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되겠지만, 중국의 반발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떠오르고 있다. 

에스텔리토 멘도사 전 필리핀 법무차관은 "대화 이외에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 무력으로 맞설 생각이 없다면 무조건 판결 수용을 압박해 남중국해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인민해방군에 전투준비 태세를 명령하고 중국의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미국은 남중국해 분쟁해역 인근에 항공모함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PCA 판결 직후 절제된 성명을 발표했다.

외교부는 "전문가들이 판결 결과를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며 "모든 관련국은 자제력과 냉철함을 발휘해달라"고 요청했다. 

필리핀은 미국, 일본과 달리 중국에 PCA 판결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PCA 판결을 앞두고 수도 마닐라에서는 수백명의 시민과 사회운동가가 참가한 가운데 중국의 판결 수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최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중국과 전쟁할 생각이 없다"며 PCA 판결 이후 대화를 하자고 중국을 제안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남중국해 정세가 미국과 중국의 정면충돌로 긴박하게 돌아가자 국내외 정세를 신중하게 검토한 후에 후속책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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