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국방 당국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협의 문제를 둘러싸고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다.

3일 개막하는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를 계기로 오는 4일 열릴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를 협의할지에 대해 양측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애슈턴 카터 장관은 2일(현지시간) 아시아안보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4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만나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특히 미국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극복해야 할 많은 기술적 문제들이 남아있다"면서도 "(사드 배치와 관련해) 곧 공개적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우리 국방부가 그간 밝혀온 입장과는 상반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 사드(THAAD) 시스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국방부는 "(한미간) 논의 완료 시기를 지금으로써는 예단할 수 없으며 양측의 논의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설명할 단계는 아니고, 좀 더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입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지난달 25일 이번 아시아안보회의 참가를 사전 설명한 자리에서도 "(한미는 사드 문제를 협의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를 유지해온 국방부는 카터 장관의 발언이 미국 언론에 보도된 지 반나절도 안돼 "이번 샹그릴라대화에서 한미 국방장관 간 사드 배치 문제 논의 계획은 없다"고 반박했다. 우리 국방부가 미국 고위 국방당국자의 발언을 즉각적으로 반박한 것 자체도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은 지난 3월 초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채택을 전후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속도를 조절하는 모양새를 취해왔다. 대북제재가 실효성을 발휘하는 데 핵심 키를 쥔 중국을 배려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대북제재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자 사드 배치 문제에 불을 댕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제재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현재 미적지근한 한미 간 논의에 동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 아시아안보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4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만나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 장관

우리 정부는 점점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계속 유지되어야만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반대하는 사드 배치 문제에 당분간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미국 국방부 관계자 발언 보도에 대해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발표가 곧 임박한 단계는 아니다"면서 "논의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이런 기류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의 이런 기류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군사전문가들도 있다.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박휘락 교수는 '국제지역연구'(제20권 제1호)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은 하층방어만을 추진함으로써 탄도미사일 위협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개념을 보유하지 못했다"면서 "특히 이러한 것이 '미 MD 참여 반대'라는 일부 인사들의 비판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 군과 전문가들의 사명감이 적었던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 한민구 국방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2016 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한 장관은 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 본회의에서 주제연설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 저지를 위한 국제 공조 강화 방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박 교수는 "현재 미군의 THAAD 배치를 두고도 몇 년 동안 논란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나 일본보다 한국의 BMD(탄도미사일방어) 구축은 매우 늦어졌고, 대규모 비용이 소요되어 필요한 요격미사일 구매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으며, 지금도 합리적인 청사진에 의해 추진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미는 지난 3월 4일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할 한미 공동실무단을 출범시키고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회의 진행 상황 등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양측은 공동실무단을 통해 주한미군사령부가 운영하게 될 사드의 배치 가능성을 비롯한 적정 부지 선정, 안전 및 환경, 비용 문제 등에 관해 협의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한미 공동실무단이 마련한 건의안을 양국 정부가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 추진될 것이라고 국방부는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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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6/03 09:2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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