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시간) 수도 아디스아바바서 약 170㎞ 떨어진 남부국가민족(SNNPR)주 구라게존의 수원지(水源地)에서 만난 세 아이의 엄마 파티마 수렐(30).

수렐은 이날도 어김없이 두 살배기 아들을 등에 업고 2시간을 걸어 이곳에 도착했다. 양손에는 1갤런(3.8ℓ)짜리 물통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물을 뜨러 온 것이다. 집에 다섯 살, 세 살 아들을 두고 하루 두 차례씩 이곳에 다녀간다.

그는 "무거운 물을 가지고 오랫동안 걸어야 하니 너무 힘이 든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에서 마실 물을 구하는 것은 보통 여성이나 아이들의 몫이다.

하루 약 8시간을 걸어 그녀가 확보하는 물은 고작 15.1ℓ. 한국인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인 280ℓ의 18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렐네 다섯 식구는 이 물로 목을 축이고, 밥을 짓고, 아이들을 씻긴다.

▲ 두 살 아들을 업고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가는 세 아이의 엄마 파티마 수렐(30)

이 일대 주민들의 상황은 수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 에티오피아 국민의 57%만 깨끗한 물을 공급받았다. 특히 국민 대부분(80%)을 차지하는 농촌 지역의 안전 급수 사용률은 49%에 그친다. 열악한 급수 환경에 매년 40만명 이상이 수인성 질병의 하나인 설사로 숨을 거둔다.

정부의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840만달러(약 98억원)를 들여 구라게존 식수 위생 환경 개선사업에 착수했다.

일대에 총 170㎞ 상당의 급수 파이프를 설치해 163개 공용급수대를 보급하고, 보건소와 학교에 각각 27개의 급수 시설을 마련할 예정이다. 공사는 내년 하반기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며, 사업이 안정화되면 구라게존 수자원국에 시설 운영·관리를 넘길 계획이다.

KOICA는 이 사업을 통해 주민 7만3천명에게 1인당 매일 10ℓ의 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KOICA 식수위생환경 개선 사업장. 수원지 인근에서 흙탕물을 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KOICA는 이 지역에서 화장실 개선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더러운 물 뿐만 아니라 비위생적인 화장실이 설사를 유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보통 길거리에서 배변하거나 1m 안팎의 구덩이를 파서 만든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비가 많이 오면 오물이 넘치는 데다 별도의 차단 장치가 없어 파리가 드나들기 쉽다.

KOICA와 함께 이 사업을 맡은 글로벌발전연구원의 권현진 연구원은 "주민들에게 위생적인 화장실의 중요성을 알리고 스스로 화장실을 짓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수원지에서 최소 30m 이상 떨어진 곳에 2.5m 이상의 구멍을 파 화장실을 만들도록 권고하는데, 이는 비가 와도 오물이 넘치지 않는 깊이"라고 설명했다.

KOICA는 화장실 개선 사업을 통해 설사 발생률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올 경우 사업 내용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사업 대상지 48개 마을을 각각 비교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권 연구원은 "위생적인 화장실 사용이 설사 차단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졌지만 이와 관련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매우 부족하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개선 효과를 규명한다면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연구 성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수진 특파원

▲ 지붕조차 없는 구라게 지역의 마을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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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5/12 10:0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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