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박사이트 총책에게서 압수한 돈다발

경찰청 사이버범죄대응과는 145억원대 불법 선물거래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46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올린 혐의(도박개장)로 20명을 검거해 2명을 구속했다. 사진은 총책이 거주지에 보관하던 도박 수익금.

[정우현 기자] "경찰청 IT(정보기술)금융범죄수사팀이죠? 인터넷 선물거래 사이트를 단속하셨다는데 사실인가요?"

작년 10월,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IT금융범죄수사팀(현 사이버테러수사2실) 사무실로 전화가 빗발쳤다. "거기가 정말 IT금융범죄수사팀이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아니냐"는 문의전화가 잇따르자 수사관들은 어리둥절했다.

전화를 건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문자메시지나 전자우편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청 IT금융범죄수사팀입니다. ○○사이트가 단속됐으니 전액 출금하세요."

 

처음에는 '변종 보이스피싱 아닐까'라고 생각한 수사관들은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경찰청 등 기관을 사칭하는 금융사기 수법은 흔하지만, 직제상의 정확한 팀 이름까지 가져다 쓰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만만하게 봤으니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은 수사팀은 문의전화 내용을 토대로 추적에 나섰다.

통신내역 수사 결과 문자메시지와 전자우편 발송자가 확인됐다. 메시지에 언급된 사이트도 실제로 존재했다. 코스피(KOSPI) 200지수와 연동해 지수 등락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돈을 걸게 하는 불법 선물거래 사이트였다.

이런 불법 사이트는 실제 금융시장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선물거래에 필요한 증거금, 예치금 등 목돈을 요구하지 않아 합법 선물거래 시장보다 접근이 쉽다. 반면 투기성은 강해 불법 도박으로 간주된다.

수사팀은 다른 사건을 처리하는 도중 틈틈이 짬을 내 5개월간 서버와 자금 이동 내역을 추적했다. 그 결과 최근 사이트 운영 일당 20명을 붙잡아 도박개장 혐의로 총책 김모(42)씨 등 2명을 구속하고 18명을 불구속 입건할 수 있었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2014년 10월 불법 선물거래 사이트를 만든 뒤 회원들로부터 투자금을 입금받아 최근까지 145억원대 판돈을 굴리면서 고객의 투자 손실금과 수수료로 46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같은 선물 도박사이트 운영 전력이 있는 이모(35)씨를 끌어들이고 고객센터 상담원도 채용하는 등 조직을 갖췄다. 합법으로 증권방송 사이트를 만들고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운 뒤 이를 매개로 도박 회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 자료/경찰청

600여명가량으로 파악된 회원들은 불법 도박사이트인 줄 알고도 사이트에 가입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이들도 도박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애초 수사팀으로 문의전화가 빗발치게 된 '미스터리'도 풀렸다.

조직원 조모(40)씨가 김씨에게 앙심을 품고 회사를 그만둔 뒤 경찰을 이용해 '복수'하려고 벌인 일이 일파만파 커진 결과였다. 경찰은 조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대학을 나와 고시를 준비하던 조씨는 형편이 어렵자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검색하다 김씨와 연결됐다. 그러나 고졸 학력인 김씨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겨 화가 난 나머지 일을 그만두고 앙갚음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사이버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조직도를 살펴보다 IT금융범죄수사팀이라는 부서를 확인하고 이곳을 사칭해 회원들에게 "돈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발신번호도 홈페이지에 있는 수사팀 사무실 전화번호를 썼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는 대학도 못 나온 김씨가 자신을 의심하고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자 모멸감을 참지 못할 만큼 자존심이 유독 강했다"며 "애초에는 회원들이 겁을 먹고 대거 돈을 찾게 해 운영에 타격을 주는 것이 목표였다"고 전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빚 갚을 돈을 마련하려고 도박하던 한 회원이 5천만원가량 손해를 보고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후 단속을 우려한 김씨 일당은 수시로 사무실을 옮기고 상호와 서버 주소도 자주 바꿨으나 결국 수사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용불량자였던 총책 김씨는 개인 통장조차 개설하지 못해 거주지 금고에 도박 수익금 3억1천만원을 현찰로 보관했다. 경찰이 거주지를 덮치자 "돈은 당신들이 가져가고 나는 좀 봐주라"며 '부당거래'까지 제안했다고 한다.

이들 일당은 작년 5월 증권방송 사이트를 만든 이후 회원이 꾸준히 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재미'를 보던 중이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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