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 기자] 아프리카 북동부 에티오피아는 기원전 8세기 남부 카파(kaffa) 지역의 칼디라는 목동이 커피열매를 먹고 흥분해 날뛰는 염소 덕분에 처음 커피를 발견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커피가 카파에서 유래했다고 믿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를 대접하는 '분나 마프라트'라는 전통 의식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

아프리카 1위, 세계 5위 커피 생산국인 에티오피아는 국민 4명 중 1명 꼴로 커피산업에 종사하며,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자국에서 소비하고 있다.

'커피의 귀부인'으로 유명한 이르가체페(Yirgacheffe) 원두를 생산하는 이들의 '커피 자부심'은 대단했다.

◇ 비옥한 땅·온화한 날씨…최적의 커피 생산 조건

지난 10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번갈아 400㎞ 넘게 달린 끝에 이르가체페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는 '예가체프'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현지 발음은 이르가체페에 가깝다.

이 지역에는 이른바 '정원 커피(garden coffee)'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다. 농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정원 규모의 밭에서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토양이 비옥한 덕에 땅은 붉었다. 연중 기온이 12℃∼28℃로 온화한 편이고, 연 강수량도 1천500㎜∼2천500㎜로 풍부해 좋은 커피가 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수확 철이 아니어서 붉은 커피열매 대신 하얀 꽃을 볼 수 있었다. 커피나무 사이사이에는 키가 3m 가까운 나무와 이파리가 넓은 옥수수과 식물이 심겨 있었다.

농업천연자원부에서 커피 마케팅을 담당하는 카사훈 겔레타는 "이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어린 커피나무를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이 식물은 뿌리에 물을 잔뜩 머금고 있어 토양의 수분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에티오피아 전통 커피 세리머니 '분나 마프라트'

농장에서 20분 거리인 콩가 커피 조합에 도착했다. 조합이 기반한 마을의 어르신들이 한껏 예를 갖춰 환영 인사를 건넨 뒤 천막으로 안내했다.

천막 안에선 여인들이 에티오피아의 전통 커피 세리머니인 '분나 마프라트'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분나'는 에티오피아 암하릭어로 커피를, '마프라트'는 요리를 뜻한다. 즉, 커피를 준비한다는 의미로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의식이다.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이 생두를 화로에 올려 즉석에서 볶기 시작했다. 이내 구수한 향이 천막을 가득 채웠다.

잘 익은 원두를 절구처럼 생긴 통에 넣어 빻은 뒤 커피가루를 제베나라는 전통 주전자에 물과 함께 넣고 끓였다.

탁자에는 케트마라고 불리는 풀잎이 깔렸고, 그 위에 소주잔보다 조금 큰 찻잔이 여럿 준비됐다. 여인은 잘 끓은 커피를 잔이 넘치도록 따랐다.

커피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향도 피워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세련된 맛에 '커피의 귀부인'으로 알려진 이르가체페 원두를 전통 방식으로 내린 커피는 묵직한 바디감이 느껴졌고, 산미도 풍부했다.

◇ "커피 없이는 못 살아"…생산한 커피 절반 가까이 자국서 소비

분나 마프라트는 전통으로만 남아있지 않았다. 에티오피아 어디를 가도 분나 마프라트를 즐길 수 있다.

'칼디스'와 같은 현대식 커피 체인점이 있었지만, 전통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 파는 곳이 더 많아 보였다. 길거리에서도 화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홀짝이는 사람들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에티오피아는 커피 생산국인 동시에 소비국이다. 다른 커피 산지가 생산량의 대부분을 수출하는 반면 에티오피아는 절반 정도를 국내에서 소비한다.

커피 수출업에 종사하는 테페라 레마는 "우리는 커피의 어머니"라고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요즘에는 수출을 늘리려고 전통만 고수하지 않고 외국의 커피 기술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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