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포커스 통신원이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의 갈등에 관한 제보를 해왔다. 통신원은 그 증거로 최근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를 내세워 김원홍의 아들 김철이 소속된 외화벌이 세력에 대한 본격적인 내사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황병서와 김원홍과의 갈등은 이미 총정치국 재직 기간부터 시작된 것이라며 1980년대 말 당시 군 담당 사법담당 조직부부장이던 김원홍이 군부 내 감시 처형을 주도하던 과정에 군 간부 담당 부부장이던 황병서와 잦은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황병서가 먼저 당 조직지도부 과장직을 거쳐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반대로 김원홍은 군에 남아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거쳐 인민무력부 보위사령관, 국가안전보위부장으로 승격되면서 갈등의 폭도 커졌다는 것이다.
  
  황병서가 총정치국장으로 옮겨가면서 장성택의 인민보안부가 추락한 틈을 타 군법으로 체제단속을 한다는 뜻에서 국가안전보위부와 동급으로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를 확대한 점도 김원홍과의 기싸움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하여 김원홍이 국가안전보위부도 김정은 경호 관련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황병서는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 근접 경호를 인민무력부보위사령부 행사총국(선군정치 시대에 맞게 군이 수령경호를 맡아야 한다는 이유로 김정일 근접경호를 보위사령부 10처가 맡았고, 나중에 그 10처가 당 조직지도부의 지도를 받는 국방위원회 산하 행사총국으로 승격, 때문에 과거 호위사령부 군복은 승마복이었지만 김일성 사망 이후 근접경호 군인들의 복장은 현재 북한군복)이 전담한 것만큼 간섭하지 말라고 반대하는 과정에 심화됐다고 한다.
  
  통신원은 "얼마 전 황병서의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가 김원홍의 아들 김철을 조사했다. 그를 비롯하여 고위간부 자녀들로 구성된 외화벌이 큰 손들이 외화횡령, 경제질서 혼란을 주도했다는 이유 때문이다"고 했다.
  
  고위간부 자녀들로 구성된 외화벌이 큰 손들이라면 '봉화조'를 뜻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통신원은 "북한에 어떻게 봉화조가 있을 수 있나? 고위간부 자녀들로 이루어진 외화벌이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봉화조' 이름을 가진 사조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정권이 허용하지 않은 불법적인 그 명칭만으로도 자칫 비밀 결사 사조직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하여 북한 실정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
  
  고위간부 자녀들이 서로 결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권력을 등에 업지 않고서는 수출이나 수입, 심지어 북한 시장 내 도매업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때문에 그 세력은 철저히 이익계산과 타산으로 움직여진다. 김정일 생존 시 오극렬의 차남 오세원 주도로 북한 고위간부의 자제들인 국제부 비서 강석주의 아들 강태성, 국가안전보위부 김원홍의 아들 김철, 전 보위부 정치국장의 아들 김창혁, 전 서기실 부부장 김충일의 아들 김철훈, 이철 대사의 아들 이익, 조총련 조선신용조합 실권자의 손녀 리수남, 북한 마약 전문회사인 대외연락부 소속 류경회사 손권하사장 등이 연합하여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를 싹쓸이했다"고 했다.
  
  통신원은 "현재까지 무력부 보위사령부 내사에 따르면 이른바 북한의 '큰 손'들은 북한의 지하광물들을 제 값에 주고 팔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 권력을 내세워 헐값에 넘겼다. 또한 김정일이 중고무역을 반대했지만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고시장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많은 부를 늘렸다.
  
  아마 황병서와 김원홍과의 싸움은 반드시 어느 한 쪽이 숙청되는 결과로 끝날 것이다. 김원홍에 비해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었던 황병서의 권한이 더 크기 때문에 김원홍이 조만간 제2의 장성택이 될 것이란 소문이 벌써부터 무성하다."고 했다.
  
  황병서가 무력부 보위사령부를 내세워 그 '큰 손'들에 대한 내사를 강행한 배경에 대해 통신원은 다른 간부들과 달리 황병서는 충성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청렴결백의 충심으로 자녀들을 외화벌이 회사에 취직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북한 권력 내부의 분열은 자녀들의 시장이권 싸움과 또 그것을 이용한 간부 상호간의 숙청에서 대폭 불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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