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일 뉴스파인더 논설위원 / 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대표
▲황정일 뉴스파인더 논설위원 / 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대표

애니메이션 ‘위시(wish)’를 봤다. 디즈니 창립 100주년 기념작이란다. 내용은 이렇다.

마법으로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다는 ‘매그니피코(왕)’가 로사스 왕국을 세운다.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에 많은 사람이 왕국의 국민이 되기 위해 모여든다. 모든 국민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오히려 마법을 이용해, 이루어질 수 없도록 국민의 소원을 가둬버린 것이다. 꿈과 희망은 자칫 잠재적인 불만의 원천이라 생각한 왕은 자신의 왕국에 티끌의 위해(危害)도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연히 이를 알게 된 소녀 ‘아샤’가 왕에 대항하여 그의 마법을 물리치고 사람들의 소원을 찾아준다는 이야기다. 대통령 윤석열이 생각났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국정감사장에서 내뱉은 검사 윤석열의 말이다. 생중계를 지켜본 시청자는 뻑 갔다. 검찰 조직에서 어찌 저럴 수 있지? 권력자에 맹목적 충성을 거부하는 강직한 검사의 상징으로 회자됐다. 그 후 그는 ‘죽은’ 권력은 물론 ‘살아있는’ 권력에도 엉 까고 들면서 정의와 공정의 화신으로 등극한다. 화신 넘버 원이여, 윤석열 만세!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거다.

필자 또한 “석열이형 파이팅” 하면서 무한 사랑과 응원을 보냈다. 윤석열의 시대는 공정과 정의의 시대가 될 거라 믿었다. 

아니었다. 정의와는 거리가 먼, 공정하고는 담을 쌓은 일이 왕왕(往往) 벌어지고 있다. 특히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유별나다. 채근담의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에게는 부드럽게 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한다)’이 대통령 윤석열 앞에서는 한낱 헛소리가 되었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머리를 내걸고 실은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혹은 전후(前後)가 다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서 쫓겨나는 빌미를 준 말이다. 

그때는 몰랐다. 어느 싸가지 없는 청년의 몽니쯤으로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이준석의 혜안(慧眼)이었다. 현재 대통령 윤석열은 확실히 양고기보다는 개고기를 팔고 있다. 

엊그제 변호사 신평이 요상한 논리를 펼쳤다. 요지는 이렇다. 

최근 대통령 윤석열과 비대위원장 한동훈의 갈등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윤석열 지지 세력이 한동훈으로 대거 이동했다. 한동훈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전문가의 지도 하에 ‘궁정쿠데타’를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의 카리스마 강한 리더쉽과 차별화를 기하기 위해서 김건희를 수단으로 했다. 중도 흡입력이 없는 한동훈은 사퇴해야 한다 등등.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요설(妖說)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이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시는 분인 줄은 진즉에 접수된 사항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상식의 사선(死線)을 타 넘는 괴이쩍은 논리를 펼 줄이야. 

요설(妖說)은 계속된다. 한동훈은 기본 칼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검사의 한계, 성장 환경, 가족 배경이 대중 앞에 드러나면 중도 흡입력을 발휘할 수 있겠나? 

한동훈의 성장 배경이나 가족사에 큰 결함이 있는 듯한 암시를 한다. 근거는 쥐뿔도 없다. 참 치사하고 허접한 음모론이다. 인성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뜨다 만 막걸리 같은 논리가 아침 방송을 타고 또 각종 언론이 이를 기사화하면서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뿌려졌다. 인터뷰 방송도, 기사화한 언론도 참 거시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하고 미묘한 권력 암투의 속내를 필부(匹夫)는 알 길이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허나 국민의 뜻에 호응하려는 자와 거스르려는 자의 싸움에서 승자(勝者)를 점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잠시나마 힘의 무게를 어쩌지 못한다 해도 국민은 ‘호응하려는 자’를 응원하고 그편에서 끝까지 함께 할 거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또다시 내려갔다. 거스른 결과다. 회생 불능인가?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당장 내 귀에 캔디 같은 신평류(類)의 요설에 귀를 기울인다면 영낙없이 매그니피코가 될 거다. 입에 더럽게 쓰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호응하려는 고언을 달게 마셔 준다면 아샤가 될 수 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유승민은 이 한마디로 박근혜의 레이저를 맞았고 그 후 그의 정치 여정은 가시밭길이 되었다. 그녀 또한 탄핵의 아픔을 경험하는데, 만약에 그녀가 유승민류(類)의 지적을 기꺼이 수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물음을 4-5년 후에 또 할 수 있을 거다. 슬픈 예감이다.

한때 멘토였다고 하니 변호사 신평에게 권하고 싶다. 혹시 가능하다면 대통령 손을 꼭 잡고 영화 ‘위시’를 같이 함 보시라고. 솔직히 영화는 별로였지만 새겨 얻을 교훈은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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