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일 뉴스파인더 논설위원 / 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대표

원칙을 지키며 사는 삶은 대개 고롭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학교에서는 원칙을 배우는 데 원칙대로 살면 괴롭다니? 모순인데 현실이다. 그걸 깨닫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원칙대로 살았더니 불이익이 오더라는. 빠르면 10대에 깨우친다. 원칙이고 뭐고 없다. 내 삶이 편하면 된다. 영악한 아이들이다. 

60대가 되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이치는 깨달았지만 고달파도 원칙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 있다. 미련한 사람들이다. 그들로 인해 세상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당장은 팔다리가 고생이다. 

“선거는 승부다.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이 엊그제 한 말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뽑는 방식을 현행 연동형에서 병립형으로 되돌리자는 의미다. 한 번 쓰고 폐기다. 손가락으로 유불리를 따져 본 결과인 듯하다. 발빠른 영악함이다.  

얼추 4년 전이다. 정의당 주연 민주당 조연의 연동형 제도가 지난 총선에 도입됐다.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경우 일정 부분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명분은 소수당의 국회 진입문(進入門)을 넓혀 줌으로써 거대 양당에 의한 병폐를 치유하자는 데 있다. 좋은 얘기고 착한 제도다. 지난 대선 때도 이재명 후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민과 한 약속인데 이제 와서 오리발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다.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선거 승리만을 위해 퇴행으로 가겠다는 거냐? 말 바꾸고 약속 뒤집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거꾸로 갈 작정이냐? 한낱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약속과 결의, 모른 체 하면 그만이냐? 따가운 비난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더 아픈 지적이 있다. 노무현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前) 대통령 노무현은 원칙과 명분을 지키려 노력한,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그 대가로 몸뚱이가 많이 고달펐다. 대한민국의 중병(重病)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지역 출마를 선택한다. 바보 같은 일이다. 낙선은 따 논 당상이다. 금배지를 얻기보다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자는 아우성을, 그는 치고 싶었던 거다. 바보 노무현은 이래서 탄생했다. 바보란 단어가 중의적 의미를 가진 것도 이때부터다. 

민주당 사람들은 ‘노무현 정신’을 열렬히 계승한다고 한다. 침 튀기면서 웅변도 한다. 이재명도 안 빠진다. 특유의 달변으로 감흥까지 준다. 웬걸, 이제 보니까 말로만이었고 말뿐이었다.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이재명의 점잖고 차분한 말은, 노무현을 진짜 바보로 만들었다. 중의적 의미가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원래의 의미. 영구 읍~~다의 그 바보 말이다.      

사대문 안에서 김가(金家) 이가(李家)보다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쉬운, 요즘이다. 연동형 비례제도를 적용할 경우 유불리의 표 계산은 고차방정식이 되어 버렸다. 우열 판단이 쉽지 않다. 무슨 근거로 이재명은 멋지게 질 것이라고 했을까? 

누군가 이야기한다. 이재명의 탐욕을 읽을 수 있다고. 무슨 소리인지 장삼이사(張三李四)는 잘 모른다. 병립형으로 돌아갈 경우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줄 수 있는 비례 국회의원이 10명 이상 늘어날 것입니다. 엄청난 권한입니다. 저수지에 묻힌 몇백억은 이제 난망(難望)입니다. 검은돈이 오갈 수 있습니다. 그걸 왜 남에게 주겠습니까? 그는 그러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아!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 

소고기랑 초밥일랑 굳이 세금으로 사 먹는 거는 참 치사한 짓이다(더 큰 걸 세금으로 편취했다면 치사보다는 파렴치다). 경기도 지사나 그 가족이 할 짓은 아니다. 저질이다. 

‘치사하다’와 ‘영악하다’는 다른 의미다. 근데 이놈들이 가끔은, 누군가에게는 같은 의미로 작동한다. 영악한 재명씨가 그 총기를 맘껏 발휘하고 추종자와 개딸들이 닥치고 추앙할 때, 노무현 류의 원칙과 명분이 어렵사리 지켜낸 민주당 간판은, 가물가물 너덜너덜해진다는 사실을 개딸들은 알고 있을까? 알아도 모른 체 하고 싶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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