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입장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 결국 화해를 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생각이 다르고, 갈길이 멀다. 그렇다면 분명 양측이 화해를 위해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게 있을 것이다. 양측 모두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화해를 위한 최소한의 도리, 그리고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둘이 약속한 그 원칙이 계속 이어져야만 신뢰가 발생하고 마침내 화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7천500만의 염원. 자유통일에도 이런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있다. 남과 북이 통일을 위해 약속한 공동의 노력, 원칙이 있다. 이른 바 조국통일 3대 원칙이다.

 

북한측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은 1972년 5월 3일 남북협상을 위해 방북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조국통일 3대원칙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를 제시한다. 이후 이는 같은 해 7월 4일 한국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부장에 의해 ‘7.4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한 동시 발표된다.

 

하지만 오늘날 이는 크게 틀어졌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김일성이 먼저 제의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양측 해석의 차이가 컸다. 북한이 말하는 3대원칙은 해석의 의미를 놓고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행위였다. 북한은 적화식으로 모든 걸 해석했다.

 

3대 원칙은 이렇다. 첫째. ‘자주의 원칙’이다.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약속이다.

 

자주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독립 그 자체를 의미한다. 북한은 이런 보편적 의미가 아니었다. 붉은 색이 가미된, 숨은 의도가 있는 자주였다. 더 풀어 말해보자.

 

우리가 말하는 자주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독립된 주체를 말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 그 원칙은 잘 지켜졌다. 우리는 상식대로 ‘자주’라는 조항을 외부의 간섭 없이 남북한의 자주적인 의사에 따른 문제해결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처음부터 의도를 담아 ‘자주’라는 단어를 넣었다. 그들이 자주와 독립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바로 ‘미군 철수’다. 북한은 ‘미제가 남조선에서 나가도록 하는 것’,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지배를 끝장내는 것’ 등으로 의미를 새겼다. 틈만 나면 미군철수를 외치며 조국통일 원칙을 어겼다고 말하는 게 북한이다. 조국통일원칙은 이를 위한 포섭이었음이 너무나 명확하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가 미군에 의해 막혔으니 이를 제거하려는 시도란 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자주노선’ 수호를 외쳐온 북한이야말로 체제정립초기부터 1950년까지 철저히 친소일변도의 입장을 견지했다. 소련에게 모든 걸 맡겼다는 얘기다. 그 이후는 또 철저한 친중공노선을 걸었다. 북한은 중국의 꼭두각시라는 소리를 들어왔고, 현재도 대부분의 연료 및 식량을 중국에게 의존, 경제, 사회적으로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자주? 어떤 게 자주인가? 중국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자주인가?

 

또 북한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은 철수했던 미군이 왜 다시 한반도에 주둔하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미군을 주둔하게 만든 것이다. 북한이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 후 어떤 일을 벌일지도 뻔하지 않은가. 우리는 살기 위해 미군을 붙잡아 뒀다. 더 강한 총을 연구하면서 겨누고 있는 이가 우리에게는 총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이니 벌써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

 

두 번째 원칙은 ‘평화통일의 원칙’이다.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실현하자는 게 골자다. 북한이 오늘날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등을 통해 이 항목을 심하게 훼손, 아니 이미 무너뜨려버렸으니 누굴 탓할 수 있겠나.

 

하지만 우리가 ‘평화통일’을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하는 통일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반면 북한은 우리의 현 정권을 타도한 후 새로운 용공정권을 수립하고 이 용공정권과 합작해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평화통일’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평화는 민족적 및 계급적 해방을 위한 혁명투쟁의 리익과 분리시킬 수 없으며... 진정한 평화는 오직 략탈전쟁과 노예의 평화를 강요하는 사회제도를 뒤집어 엎을 때만이 이룩 될 수 있다고 본다... 진정한 평화는 지구상에 비공산주의 국가가 남아있는 한 이룩될 수 없다”고 명확히 해놨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통일은 적화통일을 말하는 것이었다니 어찌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나.

 

세 번째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이다.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부분도 필요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있으니 문제다.

 

북한은 사상과 제도, 신앙과 정견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을 표방하면서도 내심으로는 한국계 각계 각층을 대상으로 한 통일전선 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시말해 북한은 남한에 대한 어떤 공감대도 형성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우리에게는 연방제통일 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해마다 연초 평양에서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를 열고 제의하는 정치협상회의, 대민족회의, 남북연석회의 등은 바로 민족대단결 노선에 입각한 것이다.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을 요구하면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는 협박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얼마전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켜 끝내 폐쇄에 이르게 한 것도 북한 아닌가. 정경분리가 잘 지켜져 왔지만 김정은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이렇게 끝나버린 것이다.

 

남한을 틈만나면 공격하고 욕하는 북한이 민족대단결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다.

 

돌이켜보면 남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합의한 통일원칙 3가지. 남북한간에 이뤄진 모든 접촉과 대화의 기본지침과 같은 구실을 했었다.

 

남과 북은 통일·대화의 기본원칙으로 합의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조국통일 3대원칙을 거듭 확인하고 있지만, 각 조항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토록 서로가 다소 다르게 해석하고 있으니 어찌 화해할 수 있겠는가.

 

일부 좌파에서는 정부가 조국통일3대원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반북대결정책, 북정권 붕괴정책, 색깔론 공안탄압, 한미일 동맹 강화정책을 펼치면서 모든 남북간 합의 및 통일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배격해 왔다고 교육한다.

 

하지만 조국통일 3대원칙 자체를 북한식, 적화식으로 해석한 그 요구에 현실적으로 맞춰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약속들을 깬 것도 북한이 아닌가.

 

북한이 해석하고 요구한대로라면 ‘자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끝내고 미군을 모두 철수시킨 이후 우리는 북한의 무력협박에 떨어야 한다. 또 ‘평화통일’의 원칙대로 우리 정권을 없애고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공정권을 수립해 협상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없어지는 셈이다. 아울러 ‘민족대단결’의 원칙대로 북한의 사상과 이념, 체제인 공산주의 및 김씨3대세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통일이 가능하다.

 

이를 받아줘야 한다고 믿는 이는 그야말로 종북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사람이다. 조국통일 3대원칙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상식이 아닌, 북한식대로 해석하는 한 절대 이뤄질 수가 없다.

 

아니 이뤄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북한에 의해 강제점령 되거나, 종북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한반도를 적화통일 하는 날 가능할 것이다.

 

김승근 편집장 hem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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