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 후보의 발언이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아버지를 기념하는 수준이 아니라 5·16을 국경일로 삼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라며 한껏 오버했고, 새누리당 비박진영도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박 후보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우파진영에서도 박 후보의 5.16에 대한 발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한 모양이다. 그만큼 아직도 여전히 5.16은 우리 역사에서 논쟁적인 사건이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또 다른 한쪽은 5.16이 내포한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5.16자체를 미화하기 바쁘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 다 어리석긴 마찬가지다.

대선을 앞두고 5.16이 새삼 논쟁적 이슈가 된 것은 박근혜 후보의 책임이 크다. 그가 새누리당 대선주자로서,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평가받는 공적 인물로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5.16에 대해 의견을 발표한 자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의 공식 토론회 자리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인지 언론이 검증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박 후보는 공적인 자리에서 대한민국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로서 걸 맞는 공적인 면모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데 박 후보는 5.16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박정희의 딸’로서, 무책임하게 아버지인 박정희의 그림자 뒤로 숨어버렸다.

‘5.16 쿠데타’의 양면성 박근혜는 모두 담담히 인정했어야

5.16 그 자체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쿠데타다. 5.16이 형식적으로 국가 체제변화를 가져온 아래로부터의 전복도 아니요, 당시 엘리트 집단이었던 군인들이 무력으로서 정권을 잡았던, 기득권 세력 내 정권교체라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5.16을 계기로 이후 우리 사회가 긍정적 변화와 발전을 이뤘다는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킨 집단이 ‘선의’를 갖고 있었다고 해서, 혹은 결과적으로 좋았다는 이유로, 쿠데타가 아닌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파괴에 불과하다. 국민적 합의에 의한 사회적 인식체계인 언어규정을 상황에 따라 자기식대로 풀어 규정하는 것은 사회의 소통과 합의를 막는 대단히 위험천만한 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5.16 그 자체는 형식적으로 명백한 쿠데타였다는 점에선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무책임하다는 것은 언론의 공식초청 토론회라는 공적 자리에서 공적 인물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사적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답변으로 곤란한 질문을 피해가려는 비겁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그날 그 자리에서 5.16에 대해 형식적으로 표면적으로 분명한 쿠데타였지만, 대한민국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고 사건 자체의 규정과 역사적 평가 문제를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 지었어야 했다. 또한 그럼에도 딸의 입장에서 그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 적절치 않고 5.16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그대로 존중한다는 정도로만 답했다면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자리는 전 대통령 딸의 소감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여당의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박 후보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5.16이 쿠데타인 사실과, 그 역사적 평가는 분명 다른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수호해야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으로서는 5.16은 당연히 쿠데타라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만 했었다. 그런데 박 후보는 대선 후보로서 말해야 할 것은 말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가진 국민의 감성에 기대가려는 듯, 지극히 사적인 딸의 입장에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만 강조한 것이다. 국민이 5.16을 실제 그렇게 느끼고 인정한다고 해서 박 후보가 그런 식으로 넘어가선 안 된다. 특히나 법과 원칙을 그렇게 강조하는 사람이 취할 태도가 전혀 아닌 것이다.

박 후보는 5.16 발언 며칠 후 “저뿐 아니라 저 같이 생각하는 국민도 많이 계시고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저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모든 국민이 아주 잘못된 사람들이냐”고 발끈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역시 박 전 대통령 딸의 입장에서, 일개 국민의 한 사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지 대통령 후보로서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박 후보는 완전국민경선제에 대한 국민의 찬성 여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경선룰’과 같은 원칙론을 내세워 일축했다. 그런 박 후보가 5.16에 대해서만은 ‘국민의 생각’을 핑계로 얼렁뚱땅 피해가는 건 우스운 일이다.

‘5.16 쿠데타’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극복해야 하는 건 우파의 책무

더 큰 문제는 이런 명확한 역사적 사안마저도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하길 거부하는 우파진영 내 일부의 극단적 태도다. 박정희의 5.16이 쿠데타이건 혁명이건 대한민국 역사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가난과 굶주림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을 반대한 세력을 탄압하고 독재를 했다는 것도 분명한 역사적 진실이다. 더더군다나 많은 국민이 그런 어두운 면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공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박정희를 아끼고 인정하는 것이지, 그가 완전무결한 초인이기 때문에 지지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박정희를 극복하겠다는 박근혜 후보와 우파진영이야말로 5.16의 표피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5.16이 주는 근본적 의미를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5.16을 쿠데타로 규정짓는다고 해서 5.16의 근본적 의미가 달라지는 게 아니다. 5.16혁명과 5.16쿠데타는 전혀 다른 것인가? 아니다. 혁명은 무조건 좋은 의미인가? 그렇다면 대량 학살을 낳은 중국의 문화혁명은 어떤가? 혁명과 쿠데타 단어에만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박정희의 공과와 박정희의 5.16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극복해야하는 게 바로 대한민국 우파의 책무다. 그런 책임감도 없이 박정희 안에만 매몰돼 있는 것이야말로 우파의 직무유기고 박정희에 대한 ‘진짜’ 배신이다.

근거없이 엉뚱한 추측으로 우파 인사 비난한 지만원 선생은 사과해야

우파가 그렇게 미래지향적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박정희가 살려주니 공자왈 맹자왈 떠드는 개자식들’이라고 주장하는 논객이 있다. 전원책 변호사를 비롯한 우파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은 박정희에 대해 “국민행복권과 국민기본권을 송두리째 위반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감옥에 가야하는 정도의 죄를 지었다, 당신의 아버지는 이런 인간이었으니, 그에 대해 딸인 당신이 책임지고 사과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박근혜는 헌정질서를 지켜야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으로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바라봐야 한다는 주문을 했을 뿐이다.

김문수, 전원책 등을 향해 이들이 하지도 않은 말로 ‘개자식들’ 운운하며 욕설을 퍼붓고 인격을 모독한 지만원 선생은 정중히 사과하길 바란다. 전원책 등이 박정희가 쿠데타를 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박정희는 독재자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게 뭐가 어떻다는 얘긴가? 이들이 박정희가 이룬 업적을 언제 부정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들이 언제 대한민국체제를 부정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박정희가 숨이 넘어갈듯 위태로운 대한민국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지 선생은 박정희가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사실을 지적한 것이 이들의 주장 전부라는 비난의 근거를 대기 바란다.

‘5.16쿠데타’에 동물적 반응할 게 아니라 우파 발전 막는 박근혜 캠프부터 비판해야

사실과 맞지도 않은 전혀 엉뚱한 감정적 배설을 풀어놓고 우파인사를 매도하고 깎아내리는 어리석은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 전혀 사실무근의 추측에서 나온 감정적 배설을 잔뜩 쏟아놓고는 박정희를 욕했다며 흥분하는 건 허위사실을 근거로 광우병에 흥분하는 좌파들의 한심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박정희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주장을 ‘박정희를 욕한다’로 받아들이는 인식수준을 가진 우파로는 좌파를 이길 수 없고, 박정희를 계승·발전시킬 수도 없다. 공부가 진짜 필요한 것은 바로 이들이다.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엉뚱한 추측으로 “네놈들에게 박정희와 같은 능력이 있느냐” “박정희를 욕하는 잡놈” “입을 지찧고 싶다” 등의 험악한 말들을 쏟아놓을 시간에 우파의 발전을 가로 막는 간신배와 아첨꾼이 가득한 박근혜 캠프나 한번이라도 더 비판하기 바란다. 그 안에는 박정희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데 자신이 없으면서도 박정희의 딸에게만큼은 잘 보이고 싶은 기회주의자와 아부꾼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야말로 우파를 망치고 보수의 가치를 해치는 진짜 ‘보수의 적’이다.

그런 이들이 권력을 잡아 박정희를 세종대왕격으로 올려놓는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박정희를 세종대왕쯤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박정희에 대한 일방적 미화는 역설적으로 박정희에 대한 자신감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파는 박정희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 첫 출발이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우파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박정희는 독재자’ ‘5.16은 쿠데타’ 이 말 한마디에 다짜고짜 흥분부터 하고 욕부터 하는 잘못된 습관을 버려야 한다. 그런 일차원적 태도로는 박정희를 계승하고 넘어설 수 없다. 보수우파는 보수우파를 ‘파블로프의 개’처럼 저차원에 머물게 하고, 권력의 개처럼 인식하게 하는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할 시기다. 또 다른 의미에서 그것이야말로 박정희를 영웅으로 승화시키는 지름길이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트위터 주소 https://twitter.com/phm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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