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김영사)이란 책은 안철수 씨와 제정임 씨의 問答集이다. 제 씨가 묻고 안 씨가 답하는 식이다.

 

安 씨가 자신을 설명할 때 한국인들이 좀처럼 쓰지 않는 自畵自讚(자화자찬)의 語法이 많은 데 놀랐다.

 

<저는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한 성격이기도 합니다. 약자에겐 따뜻하게 대하는 편이지만, 강한 사람이 부당하게 공격하면 더 세게 맞받아치는 '괴팍한' 성격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동안 척박한 환경속에서 경쟁자들과 겨루고 결국 살아남았던 것도 이런 성격 덕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경영학을 다시 공부한 이유가 '배워서 남 주려고'였거든요.>

 

<지난 10개월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사회 현안에 대해 고민하고...>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넘어갈 때마다 제가 고민한 가장 큰 기준은 '개인적으로 뭘 많이 얻을 수 있는가'나 성공확률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였습니다.>

 

<감히 말씀 드리지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은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의 결심을 '결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과장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인의 예절감각과는 맞지 않는다. 직업을 바꿀 때 오로지 '얼마나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만 생각하였다면 聖者 수준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생각만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過信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면 반드시 반발이 생긴다. 모든 인간은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결점 많은 인간이 자신은 무결점이라고 확신하고 다른 결점 많은 사람을 斷罪함으로써 유토피아를 만들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같은 역사적 사례가 많다. 獨善과 僞善이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결합되면 위험하다. 천국을 만들려다가 지옥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안철수 씨 이력 설명이 붙었는데, <최근에는 '국민 멘토'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적은 필자 소개는 필자가 반드시 교정을 본다. 이 표현을 안철수 씨가 지우지 않은 것으로 봐 그는 자신을 '국민 멘토'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그를 나의 멘토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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