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통진당의 ‘모든 의혹' 수사를 선언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통진당 혁신비대위의 자정노력을 후퇴시킨 것 아니냐?”는 우려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물론, 검찰의 당원명부 압수수색에 직면해서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한 마음, 한 몸으로 저항한 국면 하나만 두고 보면 그런 우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에는 법이라는 게 있다. 정치는 정치, 법은 법이다. 정치는 타이밍을 중시하지만, 법은 그런 것에 너무 매이면 오히려 법이 아닐 수도 있다. 법의 잣대로 볼 때는 통진당 사태에 대한 당국의 개입은 “겨우 이제?”란 소리도 들을 수도 있다. 폭력행위자들이 백주에 주먹을 휘두르고 머리채를 나꿔채고 사람을 짓밟았는데 법이 ‘타이밍' 걱정하며 며칠이 지나도록 가만히 앉았어야 하나?

 

‘종북’ 문제도 그렇다. 진보진영 내부문제는 진보진영에 맡기고 외부에선 개입하지 말라는, 일종의 ‘고상한 외면(benign neglect)'을 제의하는 사람도 있다. 가만 내버려 두면 제풀에 거덜 날 것이, 외부에서 건드리면 오히려 되살아난다는 걱정이다. 그런 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종북‘ 문제는 진보진영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는 것도 상기해야 한다.

 

‘종북’은 진보가 아니다. 그래서 ‘종북’을 진보에서 쫓아내야 한다.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나 ‘종북’ 아닌 진보가 그걸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저들을 보라. 조준호의 목을 부러뜨릴 뻔한 저 ‘결사항전’ 부대가 “네, 알겠습니다 비당권파님들, 저희는 잘못을 인정하고 순순히 물러가겠습니다” 할 위인들인가?

 

1980년대의 반제청년동맹에서 1990년대의 민족민주혁명당과 2000년대의 광범위한 ’종북‘ 문어발로, 그리고 이어서 그간의 ’숙주 위탁경영 체제‘에서 ’간부 직영체제‘로 전환한 오늘의 ’종북 몸통‘ 본격 등판으로-이 집요하고 완강한 맥(脈)과 그물을 다른 진보가 무슨 수로 자정(自淨)할 수 있단 말인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이제는 선을 그어주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상 여기까지는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명확한 구분을 지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대한민국 안의 반(反)대한민국’ 암세포의 번식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저들은 마침내 국회를 거쳐 12월엔 공동정권 수립까지 계획하고 있다. 자기들이 그 만큼 컸다는 자의식이다.

 

진보의 자정이 최선일진 모른다. 그러나 최선이 안 될 때는 차선을 취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실정법들이 그 차선의 몫을 실수 없이, 역효과 없이 수행할 수 있기를 당부할 따름이다. 나중에 가서 “쯧쯧, 안 하느니만 못 했네” 하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류근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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