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의 신 지도부는 작년 12월 30일자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세계는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고 천명했고, 신년사에서도 김일성 조선 체제를 굳건히 이어가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을 받들겠다는 점을 거듭 천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포기해서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변화를 위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이며, 가장 시급한 것이 인권 개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1973년 미국의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한 이래 북한은 인권 후진국으로 낙인찍혀 있으며,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1989년 이래 매년 북한인권보고서를 통해 인권실상을 알리고 있습니다.「유엔 인권위원회」도 2005년부터 매년 ‘북한인권규탄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유럽의회(EU)도 2006년에 이어 2010년에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미국은 2004년에 그리고 일본은 2006년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사국인 한국은 국제사회의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일부 세력은 북한에는 먹고사는 문제는 있어도 인권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인권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내정간섭이라며 반대합니다. 북한의 현 체제는 북한 주민의 선택이므로 존중해야 하며 인권문제도 북한체제의 속성을 고려하여 평가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인권문제에 간섭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통일을 막는 반통일이라는 주장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05년 발의된 ‘북한인권법안’은 7년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으며, 지금도 여당의 무관심 속에 표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두 단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첫째, 북한의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인권을 만고불변의 보편적 가치로 여기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합니다. 인권, 즉 Human Right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 누려야 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지위 그리고 자격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무조건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인류보편적 가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특수사정이나 북한의 내부사정은 인권을 외면하는 변명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반통일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가능하려면 북한이 우리와 비슷한 체제로 변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인권을 거론하지 말라는 것은 북한정부와의 관계를 의식하는 것으로 평화적 분단관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화적 분단관리를 위해 인권을 거론하지 말자고 해야지, 왜 반통일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로서는 북한의 변화도 필요하고 남북관계 개선도 중요하기 때문에 균형과 조화를 통해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쫒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권이 인류 보편적 가치라고 하는 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법의 오남용으로 부당하게 인권이 침해되었다면 당연히 항의해야 합니다. 다른 목적을 위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추궁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권문제를 특정정책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은 당치 않습니다. 인권문제는 순수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민들이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 정치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 납북억류자 문제, 탈북 난민문제 등 숱한 인권문제를 배태하는 북한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인권은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보-혁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어야 합니다. 인권을 외면하면서 평화애호세력, 민족민주세력, 양심세력 등을 운운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 모두가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털어낼 기회라는 점을 강조해야 마땅합니다.
김태우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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