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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유교경전에서는 소,돼지,양,닭고기처럼 신(조상신)에게 바치는 희생물중 하나임.

닉네임
beercola
등록일
2016-07-12 02:19:51
조회수
11207
개고기! 유교경전에서는 소,돼지,양,닭고기처럼 신(조상신)에게 바치는 희생물중 하나임. 이런 문제는 세계사나 인류의 오랜 종교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함. 세계의 전통 종교와 역사에 대한 지식과 교양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고, 자기들만의 문화로 다른 고급 문명권의 종교.역사.문화를 재단하며 매도하는것은 지역 이기주의로 빠질 우려도 많음.


1. 서양인들이 동아시아의 여러가지 문화를 접하면서, 거론하는 문제 중 하나가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현대의 서양인과 다르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유교의 제사에서 사용하는 다른 고기는 현대세계의 서양인(고대나 중세의 서양인 중 일부는 개고기를 먹었다고 자료에 나옴)들에게 무리가 없는 똑같은 식용 고기인데, 일부 서양인들은, 과거의 종교나 문화.역사에서 유래된 동아시아의 제사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유교문화권(중국.한국.베트남등)에서, 개고기를 먹는 오래된 종교관행과 관습은 유교경전에서 유래되기도 합니다. 수천년전에는 현대인의 사고방식(개를 애완용이나 반려동물로 개량시켜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문화)과 다르게, 개는 야생동물을 개량시켜 사람들이 데리고 살면서 제사나 약용.식용으로 쓰던데서 유래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유교문화권에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소,돼지,양,닭고기처럼 신(조상신)에게 바치는 희생물중 하나였을 뿐이며, 그 오래된 종교적 관습과 문화가 단절되지 않고, 오랫동안 이어진 것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 얼마전 타계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볼로냐대 교수도 지냈고, 기호학자.철학자.역사학자.미학자]는 이렇게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개고기 먹는 것은 다른 관습일뿐”(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글들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2.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에서는 종묘에 제사할 때, 올리던 여러가지 제사용 고기 중, 개고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기 곡례(禮記 曲禮)




凡祭宗廟之禮:牛曰一元大武,豕曰剛鬛,豚曰腯肥,羊曰柔毛,鷄曰翰音,犬曰羹獻,雉曰疏趾,兔曰明視,脯曰尹祭,稾魚曰商祭,鮮魚 曰脡祭,水曰清滌,酒曰清酌,黍曰薌合,梁曰薌萁,稷曰明粢,稻曰嘉蔬,韭曰豐本,鹽曰鹹鹺,玉曰嘉玉,幣曰量幣




무릇 종묘에 제사할때의 예법은 소는 일원대무(一元大武), 큰 돼지는 강렴(豕曰剛鬛), 작은돼지는 돌비(豚曰腯肥), 양은 유모(羊曰柔毛), 닭은 한음(鷄曰翰音), 개는 갱헌(犬曰羹獻), 꿩은 소지(雉曰疏趾), 토끼는 명시(兔曰明視), 포는 윤제(脯曰尹祭), 고어는 상제(稾魚曰商祭), 선어는 정제(鮮魚曰脡祭), 물은 청척(水曰清滌)...




. 필자 주 1). 예기 수록내용은 번역자들마다 달라, 과거의 것들을 그대로 수록하는 책도 있고, 필요에 따라, 중요한 부분만 수록하는 책도 있습니다. 유교경전의 사서 오경 중 예기와 춘추는 필요에 의해 사서삼경 교육으로 간소화하는 교육제도가 시행되기도 하여, 한국의 번역서중에는 예기의 모든 내용을 수록하지 않는 책도 있습니다. 필자가 가진 예기 번역서도 위 내용은 생략하여 수록하여, 자세한 해석은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2. "개고기 먹는 것은 다른 관습일뿐"...한국 옹호한 움베르토 에코




국민일보 2016.02.20, 김영석 기자 보도기사.

http://blog.daum.net/macmaca/2107




3. 역사적으로 개고기를 먹었던 나라들.




1) 북서 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그리고 유럽 일부지역




스페인의 엑스트레마두라, 스위스의 농촌지역 및 알프스 지역, 20세기 초 독일,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때 파리의 시민들,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기아에 빠진 시민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에 맞서 싸우던 바르샤바의 시민들




다음은 그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자료입니다.




- 다 음 -




기타 지역



북서 아프리카 지역에 걸쳐 사는 베르베르인들은 개고기를 먹었다. 개고기 식용이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에 널리 확산돼 있었다는 사실을 중세 아랍의 기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들에게 대추야자를 먹여 키웠으며 사람들은 개고기를 맛있는 음식으로 여겼다. 특히 여성들은 개고기를 먹으면 풍만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북아프리카의 개고기 식용은 20세기까지도 계속됐으나, 오늘날 대부분의 북아프리카 주민들은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서구인들만큼이나 혐오한다. 사실 개고기 식용은 주로 베르베르인들에 의해 이뤄졌다.

유럽에서도 오늘날 스페인의 엑스트레마두라에서는 개고기를 별미로 먹고 있으며, 스위스의 농촌 지역이나 알프스 지역에서도 개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20세기 초에는 독일에서도 개고기를 먹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덜 익은 개고기 식용에 따른 선모충 감염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프랑스도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시기에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돼 굶주린 파리의 시민들이 개고기를 먹었다고 하는데, 고양이와 개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있었다고 하니 단지 우발적인 도살에 의한 식용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창 브리지트 바르도의 한국인의 개고기 식용에 대한 발언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던 2001년, 한국의 한 중앙일간지를 통해 1910년대 파리에서 최초로 개고기 정육점 개점을 알리는 사진이 게재돼 당시 프랑스에서 개고기 소비층이 있었음이 알려졌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기아에 빠진 시민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에 맞서 싸우던 바르샤바의 시민들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1910년경 파리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다는 현수막을 내건 개고기 정육점.
1910년경 파리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다는 현수막을 내건 개고기 정육점.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부족의 상당수도 개고기를 식용했다. 그리고 16세기에 개고기 요리가 가장 융성했던 곳 가운데 하나가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아스텍족은 거대한 강아지 사육장을 두고 털이 없는 치와와와 동족인 갈색의 개들을 길렀다. 1500년대 초 스페인의 한 선교사가 쓴 글이 있다. "400마리의 크고 작은 개들이 나무 상자 안에 갇혀 있었다. 일부는 이미 팔려 나갔고, 일부는 팔리고 있었다. 놀라는 내 모습을 보고, 그 지역에 익숙한 한 스페인 사람이 '뭘 그리 놀라세요. 오늘처럼 이렇게 개가 조금 나온 것은 처음 보는 걸요!'라고 말했다. 보고 있자니 정말 그날 공급량이 굉장히 딸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출처: 기타지역((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세계의 금기음식 이야기, 2008. 12. 25., ㈜살림출판사)




2). 미얀마, 라오스, 그리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폴리네시아인




다음은 그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자료입니다.




- 다 음 -




동남아시아와 폴리네시아






베트남 북부 지역은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 중국식 생활 방식이 많이 침투해 있다. 개고기 식용 관습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개들은 집을 지키고 돼지와 서로 다투어 가며 음식 찌꺼기를 먹다가 결국에는 사람들의 배 속으로 들어간다. 제례가 있을 때나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할 때 개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개고기를 좋아해 개가 어느 정도 몸집이 커지면 먹어 버리기 때문에 늙은 개를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미얀마와 라오스 지역에서도 개고기 식용 관습은 오래됐다. 대략 기원전 3500년 이전까지 올라가는 개고기 식용 관습은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통종교에 따르는 일부 부족들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말라야와 말레이 제도에서는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처럼 개고기 식용의 양태가 뒤죽박죽이다. 그 원인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압력 때문이며, 따라서 개고기를 먹는 규모도 줄어들었다. 이러한 종교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개고기 식용 현상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폴리네시아의 주요 세 집단인 타히티인과 하와이인, 그리고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개고기 식용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개는 돼지와 닭과 함께 그 지역에서 기르는 가축이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일부 개를 집안에서 길렀다. 나머지는 울타리를 치거나 나무 아래에 만든 오두막에서 길렀다. 대부분의 개들은 찌꺼기를 스스로 찾아 먹었으며 일부에게는 생선 찌꺼기를 넣은 야채요리를 규칙적으로 먹여 살을 찌우기도 했다. 폴리네시아에서는 개는 신과 나눠 먹어도 될 정도로 좋은 음식이었기 때문에, 사제들이 중요한 제례에서 개를 많이 잡았다. 이처럼 폴리네시아에서 개고기는 신과 나눠 먹어야 할 정도로 좋은 음식이었다. 타히티와 하와이에서는 사제들이 중요한 제의에 개를 많이 잡았으며, 제물로 바친 개를 자신들이 먹었다. 타히티와 하와이에서는 사제들과 귀족들만이 개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만, 희생제가 끝나면 평민들은 남은 것을 몰래 가져다 가족에게 주었다. 이처럼 개는 고기 때문에 폴리네시아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털·가죽·이빨·뼈 등도 쓸모가 많아 더 가치 있게 여겨진 가축이었다.




. 출처: 동남아시아와 폴리네시아(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세계의 금기음식 이야기, 2008. 12. 25., ㈜살림출판사)


3). 고대 로마인




다음은 고대 로마인도 개고기를 먹었으며, 북미·아프리카·남태평양 섬 등지에서도 식용하였다는 자료입니다. 스위스의 동부 지역에서도 개고기를 먹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 다 음 -

개고기의 어원과 유래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향육(香肉)이라 하는데 『삼육경(三六經)』이라는 개고기 음식책에는 “일황(一黃), 이흑(二黑), 삼화(三花), 사백(四白)”이라 하여 황구를 제일로 치고, 다음은 검은개, 이어서 얼룩무늬개, 하얀개의 순이며, 개의 털빛에 따라 맛이나 효험이 다르다고 한다.

북한이나 연변 교포들은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한다. 우리는 개고기, 개장국, 보신탕, 사철탕, 영양탕 등으로 부르지만 북쪽에서 ‘단고기’라고 하는 것은 연유가 있음직하다. 이규태는 ‘단고기’의 어의(語義)를 다음과 같이 유추하였다. “첫째, 달다는 것은 단맛이라기보다는 좋은 맛이라는 뜻이다. 둘째, 개고기는 오랜 시간 약탕처럼 달여서 진하게 만들기 때문에 ‘달이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셋째, 신에게 희생으로 올렸다가 음복하는 제사 음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우리 조상을 비롯한 북방 민족의 기본 어휘인 산스크리트어 중 ‘단’, ‘다나’는 제사를 지내고 나누어 먹는 희생 음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개고기는 흔히 동양권에서만 먹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고대 로마에서도 먹었으며, 북미·아프리카·남태평양 섬 등지에서도 식용하였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먹는 나라로 알려졌고, 실제로도 즐겨 먹고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스위스의 동부 지역에서 개고기로 만든 소시지와 훈제품을 먹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인류는 풍토나 지형에 따라 어떤 가축은 길러서 일을 시키기도 하고 집이나 약한 가축을 지키게 하거나 사냥 때에 도움을 받기고 하고, 털을 깎아서 옷을 만들거나 젖을 짜서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동물이 늘어나거나 늙어서 필요가 없어지면 잡아서 고기를 식용해 왔다. 다만 종교나 문화적 차이로 특정한 가축을 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으로 문명의 우열이나 선진과 후진의 기준을 삼을 수는 없는 법이다. 말고기를 먹는 백인은 문화인이고 개고기를 먹는 황인종은 야만인이라거나, 소를 먹지 않는 인도인은 개명인이고 새우나 게를 안 먹는 유태인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아랍인을 몰아서 미개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헌에 나오는 개고기 음식

개는 인간이 사육한 최초의 동물로, 우리나라에도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개뼈가 널리 출토되었다. 중국의 『주례』에서도 식용 가축으로 개를 들고 있고, 제사의 희생물로도 쓴다. 더운 삼복에 구장을 먹는 풍습은 그 유래를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예기』의 월령에 “맹추(孟秋)에 천자가 개고기를 먹는다”고 하였는데, 맹추는 음력 7월이니 바로 복중에 해당한다. 『사기』에서는 진나라 덕공이 삼복 제사를 지내는데 사대문에 개를 잡아 못박음으로써 충해(蟲害)를 막았다고 하였다. 지금은 중국에서 개를 잡는 풍속은 없어졌고 우리나라에만 아직까지 남아 있다.

조선 시대의 음식책에서는 개고기 음식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는데 『임원십육지』, 『산림경제보』,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등이 그것이다. 『음식디미방』에는 개고기찜, 느리미, 삶는 법, 고는 법, 개장(순대) 등 여러 가지 만드는 법이 나온다. 또 대개의 책에서는, 냄새가 많이 나므로 고기를 여러 차례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하였지만 『규합총서』에서는 씻으면 오히려 냄새가 난다고 하였다. “개고기는 모르는 사람은 깨끗이 씻어야 개 냄새가 없다 하지만 본초(本草)에서는 살찐 것은 피도 양기로우니 피도 버릴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피가 사람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맛도 돋워 주니 물에 씻어 고면 오히려 개 냄새가 난다.

날 차조기잎을 개장에 넣으면 냄새와 고기 독을 없앨 수 있다. 개를 잡을 때에는 찍어 죽이지 말고 매달아 죽여 껍질을 벗길 때 그릇을 놓아 피와 고기를 한데 받는다. 봄에 눈이 붉은 개는 미치려 하는 것이므로 먹지 말고, 구월에는 먹지 말며 매달 술(戌)일에도 먹지 마라.”하였고, ‘누른 개 삶는 법’에 대해서는 “누른 개에게 황계 한 마리를 먹여 5~6일 후에 잡아서 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 참기름과 함께 작은 항아리에 넣어 밀봉하여 무르도록 중탕한다”고 하였으니 미리 닭을 먹여 개를 살 찌워서 잡는 것이다.

개고기로는 대부분 찌거나 국을 끓여 먹지만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구이와 포 만드는 법이 나오고, 구족초(狗足炒)·구비순족초(狗鼻脣足炒)·구미초(狗尾炒)등 다리·꼬리·코와 입술로 만든 음식이 나오는데 성균관생들이 별미로 즐겼다고 한다.

개고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가정에서 부녀자들이 다루기를 꺼려 남정네들끼리 추렴하여 개 한 마리를 사서 냇가에 가서 하루 놀면서 개장을 끓여 먹었고 귀한 아이에게는 개고기가 부정하다고 하여 먹이지 않고 대신 육개장을 끓여 주었다고 한다. 조선조 말 궁중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고 복날에 대신 육개장을 먹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1795년 정조 때의 수라상 식단에 구증(狗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궁중에서도 개고기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 출처: 개장국(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1, 초판 1998., 10쇄 2011., 현암사)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과 세계에 대해 되돌아보고, 더 잘 이해하고,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작성일:2016-07-12 02:19:51 61.43.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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