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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뿌리를 둔 영국 하노버 왕가... 그리고 현대 독일계 미국인

닉네임
beercola
등록일
2016-07-11 03:19:29
조회수
11162
독일에 뿌리를 둔 영국 하노버 왕가... 그리고 현대 독일계 미국인

1. 하노버 왕가[House of Hanover, 王家]. 두산백과의 설명
영국의 왕가(1714∼1901).
1701년의 왕위계승법에 의하여 앤 여왕이 죽은 뒤, 독일의 하노버가(家)에서 영입한 조지 1세에서 시작된다. 동왕(同王)과 조지 2세는 독일 출생으로, 영국의 정치에는 관심이 적어 의회정치 및 책임내각제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다음의 조지 3세는 왕권의 회복을 도모하여 의회를 조종하였으나, 결국 미국독립의 실태(失態)를 초래하였다. 그 뒤 조지 4세, 윌리엄 4세를 거쳐 빅토리아여왕이 즉위하여, 64년의 치세 중에 영국의 최번영기를 맞이하였다. 다음 에드워드 7세의 즉위와 함께 색스 코버그 고타왕조라 개칭하였으나, 그것은 독일계의 명칭이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적국이 됨에 따라 조지 5세 시대인 1917년 윈저왕조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년 가까운 치세기간 중에 왕권은 국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관행(慣行)이 점차 강하여져서 ‘국왕은 군림하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 ─王家] (두산백과)




2. 하노버 왕조. Basic 중학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의 설명.




하노버 왕조




독일에 뿌리를 둔 영국의 왕가. 1701년 왕위 계승법에 의하여 앤 여왕 사후 하노버 선제후인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1714년 조지 1세로 영국 왕에 즉위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조지 1세(1714~1727년 재위)를 비롯해 조지 2세(1727~1760년 재위), 빅토리아 여왕(1837~1901년 재위) 등 6명의 군주를 배출했다. 하노버 왕가 다음에는 1917년 윈저 왕가에서 영국 왕이 배출되었다. 조지 1세는 영어를 못하고 영국 사정에도 눈이 어두워 외국인 취급을 받고는 했다. 또 하노버에 칩거하는 일도 잦아 정치는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내각을 조직해 행정을 책임지게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내각 책임제의 시원이다. 이렇게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수립되었다.




. 출처: 하노버 왕조(Basic 중학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 2007. 7. 10., (주)신원문화사)/ 엮은이 임성재






3. 독일계 미국인. 위키백과의 설명














독일계 미국인







독일계 미국인
German Americans
Deutschamerikaner




인구

50,764,352 명

미국 인구에서 17.1%를 차지함. (2009)


언어
영어, 독일어

종교
기독교 (개신교 51%, 로마 가톨릭교 26% 등), 유대교 1%, 기타 16%[3]

관련민족
독일인,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스위스계 미국인, 네덜란드계 미국인, 펜실베이니아 더치, 독일계 캐나다인

독일계 미국인(German American)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독일계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 인구에서 약 5천만 명, 곧 약 17%를 차지하며 미국에서 가장 큰 자기 보고된 조상 전래의 민족단이다.[4] 오하이오 주, 아이오와 주, 미네소타 주, 위스콘신 주, 네브래스카 주와 다코타 지방을 포함한 중서부 지방 상류 주들이 3분의 1 이상의 가장 높은 독일계 미국인들의 비율을 가지고 있어도 캘리포니아 주, 텍사스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가 독일계 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편이다.

2010년 미국 인구조사국에 의하면 독일계 미국인이 총 미국 인구의 17.1%를 차지하며, 아일랜드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잉글랜드계 미국인을 앞서 가장 큰 조상 전래의 민족 단체를 형성하였다.

역사적인 독일의 주들이 해외 식민지들을 가지지 않았고, 1680년대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들에 첫 현저한 독일인 이민들이 도착하여 펜실베이니아와 뉴욕 지역에 주로 정착하였다. 독일인들의 이민은 19세기 동안에 8백만 명의 가장 큰 수로서 지속하였다. 그들은 대지의 인력과 종교적 자유에 의하여 당겨졌고, 대지의 부족과 종교적 및 정치적 압박에 의하여 유럽의 외부로 밀려났다. 미국에 도착한 많은 이들은 종교적 밑 정치적 자유를, 어떤 이들은 유럽보다 더 나은 경제적 기회들을, 다른이들은 신대륙에서 간단히 깨끗하게 시작되는 기회를 위한 길을 찾았다. 1850년 이전에 도착한 이민들은 자신들의 강한 농장 기술들이 지불할 만한 가장 생산적 대지를 찾은 농부들이었다. 1840년 후에 많은 이민들은 독일어 사용 구역 "게르마니아"가 곧 생긴 대도시들에 왔다.[5][6][7]

독일계 미국인들은 미국에 첫 유치원을 설립하였고,[8] 크리스마스 트리 전통을 소개하였으며,[9][10] 핫도그와 햄버거 같은 인기있는 미국식 음식들을 창설하였다.[11]

독일계 미국인들의 축하식은 전국을 통하여 열리고, 뉴욕에서 매 9월마다 세 번째 토요일에 열리는 독일계 미국인 슈토이벤 행렬식이 가장 잘 알려진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시카고, 신시내티, 밀워키, 세인트루이스와 다를 도시들에서 해마다 열리는 주요 이벤트들이 있다. 미국에 온 다른 이민들처럼 압도적인 독일인 혹은 독일계 주민들은 본질적으로 미국화되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과 세계에 대해 되돌아보고, 더 잘 이해하고,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작성일:2016-07-11 03:19:29 61.43.67.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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