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유연해진 정부의 잇따른 대북 메시지가 정책기조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는 남북관계에 빚장을 걸어놓은 5ㆍ24 조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다. 이 대통령은 22일 "북한 사회가 안정되면 이후 남북관계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조의ㆍ조문과 관련해) 취한 조치들은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에 보이기 위함이고, 북한도 이 정도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우익 통일부장관이 그동안 "북한을 흔들 의도가 없다"며 대화채널 구축을 위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지만, 이 대통령의 언급은 무게를 달리한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언급인 데다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에 대한 대북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간접적인 인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천안함ㆍ연평도 사건과 관련, "김 위원장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는 22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언급도 눈길을 끈다.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은 김 위원장의 사망과 함께 털고 가자는 뉘앙스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도 정책을 바꿀 기회를 맞은 만큼 우리 정책 선택의 폭을 미리 예단해서 제약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고도 했다.

 

류 장관도 23일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에서 "북측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식적으론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측의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하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설명이다. 류우익 통일부장관은 최근 김 위원장의 사망과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은 별개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에서도 유연성의 폭과 속도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우익 장관을 중심으로 한 통일ㆍ외교 파트는 김 위원장의 사망을 남북관계를 리셋하는 기회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반면, 국방ㆍ안보ㆍ정보 파트는 신중론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 위원장의 사망에 대한 정부 담화를 계기로 유화론에 다소 무게가 실리면서 양측이 대북정책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언급은 일단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유동성이 커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데 1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의 주도권과 안정적 상황관리를 위해 대북 접근을 강화하는 것도 우리 정부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배경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정부가 "앞으로 잘 해보자"며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새로운 관계설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북한의 조문 정국이 끝나고 내년 1월 초 나오는 신년 공동사설을 지켜본 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북측이 기존의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보다 전향적으로 나온다면 이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화답'하면서 긍정적 흐름을 이어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북미 간 협상을 통해 6자회담 재개 등 북한 핵 문제가 진전되면 한반도 문제의 또 다른 축인 남북관계도 상당한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어떤 남북관계를 원하느냐, 비핵화에 대한 어떤 입장을 정하고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정부가 남북관계를 가로막은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의 덫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려는 포석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문제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도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 우리 정부나 북측 가운데 어느 한 쪽이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남북관계는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가 큰 틀에서 5ㆍ24 조치의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적용에서 유연성과 탄력성을 강화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5ㆍ24조치의 부분적 완화나 탄력적 적용으로 출구를 모색할 것이라는 얘기다.

 

5ㆍ24조치의 탄력 적용은 이산가족상봉을 매개로 한 식량 등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 발휘될 가능성이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부가 내년 초 이산가족 상봉을 매개로 한 적십자회담에서 식량지원 등을 하면, ㆍ24조치를 유지하는 속에서도 북측이 남측의 변화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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