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운노조의 전·현직 간부 등 수십명이 인력 전환배치, 노조 가입·승진, 일용직 공급 등에서 구조적인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4개월간 수사가 진행된 끝에 대규모 기소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인물은 배임수재와 사기 등 6가지 혐의로 이미 재판에 넘겨진 김 모 전 위원장을 포함해 이 모 전 위원장, 터미널운영사 임직원 4명, 일용직 공급업체 대표 2명 등 모두 31명이다. 이중 구속기소 된 인원이 16명이다. 부산지검 특수부의 공소사실을 보면 항운노조의 취업ㆍ승진 관련 금품 비리가 보란 듯이 되풀이돼 충격을 준다. 부산항운노조에서는 2005년에도 검찰 수사로 40여 명이 구속기소 된 바 있다.

이들이 저지른 비리를 보면 그야말로 '비리 백화점'으로 불러야 할 정도다. 조합원 가입, 조장·반장·지부장 승진, 복직이나 정년 연장 시 1천만~5천만원의 뒷돈이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위원장 등 14명이 취업, 승진 대가로 챙긴 돈이 무려 10억이 넘는다고 한다. 취업 자격이 없는 노조 간부 친인척 등 135명을 유령 조합원으로 만들어 이 중 일부를 부산신항 물류 업체에 전환 배치한 조직적인 채용 비리 혐의도 드러났다. 부산항운노조와 일용직 공급업체, 터미널운영사가 서로 짜고 노무 공급권을 독점 공급했고 이 과정에서 금품로비가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심지어 노무관리 대행사는 항운노조 지부장 친형이 운영하는 업체였다.

더욱 충격적인 대목은 교도소 내 인권침해를 조사해야 할 국가인권위 간부가 되려 지위를 이용해 구속된 이 전 노조위원장 특별면회와 가석방을 청탁했고 이 전 위원장이 풀려난 뒤 측근을 통해 3천만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인권위 부산 소장으로 재직한 이 간부는 부산항운노조 간부와 공모해 항운노조 조장 승진 대가로 2천만원을 챙겼고 항운노조 지부장에게 지인의 취업 청탁금 300만원을 건넨 혐의도 있다. 부산에서 인권운동을 해온 이 간부는 인권위 재직 전부터 이 전 위원장과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자신의 임무와 권한을 정반대로 이용하며 비리를 저질렀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고 말았다.

부산항운노조 비리는 단순한 채용 비리를 넘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구조적 비리로 진화한 모양새다.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노조의 간부들이 내부 견제와 외부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온갖 방법으로 사익을 챙긴 행위는 매우 개탄스럽다. 노조 간부와 결탁한 인권위 간부의 행태는 더 할 말을 잃게 한다. 지난달에는 한 조합원이 부산항운노조는 자정 능력을 잃은 세습 마피아라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지난 2월에는 부산지검 특수부가 항운노조의 수사 대비 교육 등 조직적인 수사 방해 행위를 강력히 우려했다. 부산항운노조는 임원 수 대폭 감축과 과감한 개혁을 하겠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셀프 개혁'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미지수다. 노조의 개혁 노력과 함께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등 감독기관들은 부산항운노조의 고질화한 구조적 비리를 발본색원할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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