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군화


“조상이 고생 하면 후손이 편안하다”


C.S.포레스터라는 영국 소설가가 쓴 <혼블로워>라는 소설이 있다. 나폴레옹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영국해군에 견습사관으로 임관한 혼블로워라는 청년이 이후 수많은 전투와 모험을 겪으면서 성장, 해군제독이 될 때까지의 역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18세기말 19세기 초 영국해군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소설 속에 그려진 영국해군의 모습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 대영제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건만, 소설 속의 영국해군은 망망대해에서 인간 이하의 근무조건 아래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고단한 인생으로 묘사된다.

수병들은 모로 눕기도 비좁은 선실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 사관(士官)이나 함장의 경우도 옷가방 하나 들여놓으면 꽉 차는 방에서 빵껍질 태운 것을 더운 물에 넣어 커피랍시고 마시는 생활을 한다.

 
물론 이 소설은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용기와 헌신, 전우애, 애국심, 대영제국 해군 장교로서의 자부심 등도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당시 영국해군 장병들의 고단한 삶이다. 왜일까?

바로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조그만 섬나라에 불과한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과거에 비해서는 쇠했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영국인들 역시 선조들의 희생 덕분에 여전히 큰소리치며 살 수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반면에 우리 조상들은 어떠했던가? 왜구의 노략질이 두려워 남해안의 섬들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을 폈고, 눈앞의 대마도조차 개척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500여년 동안 나라의 문을 닫아걸고 안으로 움추러든 결과는 망국의 치욕이었다. 그 뒤에 온 것은 분단과 6-25였다.

조상들이 진취적이지 못했던 댓가를 후손들이 고스란히 치렀다고 하면 지나친 얘기일까?

소설<혼블로워>를 읽는 내내 “조상이 고생을 하면 후손이 편안하고, 조상이 편하면 후손이 고생한다”는 생각을 했다.

 
희생 위에 발전 있다

 
한국인들이 안일과 쇄국의 사슬을 끊고 용틀임하면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특히 월남전 파병 이후부터였다.

 
물론 희생도 있었다. 월남전에서는 5000여명의 전사자와 수만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열사의 사막에서, 공장에서, 건설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산업전사들이 죽고 다쳤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라 안팎에서 수많은 이들이 일을 하고 있지만, 특히 감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5대양 6대주를 누비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상품을 파는 무역역군들과 석유와 원자재들을 실어오는 선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시대의 ‘혼블로워’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희생도 따른다. 내 고교 동창 가운데도 모 은행의 중동지점을 개설하러 나갔다가 객사한 친구가 있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곤욕을 치른 선원들도 그런 희생자들 가운데 하나다.

 
얼마 전 소말리아해적들에게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은 이제 대한민국이 그런 희생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쾌거였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단순히 해적소탕작전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힘, 나라의 의지, 나라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 일대 ‘사변’이었다. 온 국민이 통쾌해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박지원, ‘아덴만 여명’ 국정조사 요구

그런데 그걸 배 아파하는 자들이 있다. 바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같은 자들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 성공했을 때, 민주당은 마지 못해 의례적인 축하논평을 냈다. 그때 이미 그 속내가 보였다. 우리 선원들이 무사히 구출된 것이 기쁘다기보다는, 그로 인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는 것을 더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험을 무릅쓰고 작전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가 해적들에게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의 용태가 안 좋다는 보도가 나오자 박지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아덴만 여명’을 정치적인 이유에서 과잉홍보했고, 그 과정에서 석해균 선장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참 기도 안 차는 얘기다. 석해균 선장의 용태가 악화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또 정부가 ‘아덴만 여명’ 작전을 과잉홍보한 혐의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게 국정조사까지 해야 할 일인가?

인질구출작전의 전설로 꼽히는 엔테베 구출작전에서는 희생자가 없었나? 작전을 지휘하던 요니 네타냐후 중령이 전사했고, 민간인 세 명이 사망했다. 그 중 한 명은 이스라엘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했다. 작전이 시작되기 전 병이 있어 병원으로 후송됐던 인질은 구출되지 못하고 이디 아민에 의해 참살됐다.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엔테베 구출작전에 대해 야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박지원式 思考의 해악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기 시작하면, 제2, 제3의 ‘아덴만 여명’은 불가능하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우리 국민을 납치한 해적이나 테러범들에게 돈을 주고 그들을 구해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지원과 같은 자들은 위험한 구출작전보다는 그게 합리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면 “그러면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국민을 윽박지르고,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사태가 나도 그 꼴난 “평화”만을 외쳐온 박지원다운 해법이기도 하다. 김정일이건, 소말리아해적이건, 악(惡)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악에게 굴종하면서 돈으로 거짓평화를 사겠다는 것 - 그게 박지원처럼 노예근성이 골수에 박힌 자들의 전형적인 해법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인은 납치하면 돈이 되며, 아무런 위험도 따르지 않는다”는 인식을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심어주는 결과가 된다. 결국 해외 곳곳에서 한국인들이 테러범의 표적이 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박지원 같은 자들의 해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큰 해독이 있다. 그건 바로 1960년대 이후 50여년간 모처럼 발현되어 온 우리 국민의 진취적 기상을 좀먹는다는 점이다.

상대가 소말리아 해적이건, 김정일이건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발상은 기본적으로 위험과 희생에 맞서 싸우는 투쟁정신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오히려 왜구의 침탈이 두렵다고 섬과 해안을 버려두고 내륙으로 백성들을 도망시켰던 조선시대 위정자들의 비겁하고 나약한 사고방식과 통해 있다.

 
우리 국민을, 우리 후손을, 다시 악(惡)에 굴종하고, 도전을 회피하는 비겁하고 나약한 존재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

 
석해균과 박지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험이 있어도, 희생이 있어도, 맞서 싸우는 용기와 기개다. 위험을 무릅쓰고 해적들을 기만하면서 우리 해군의 구출작전이 가능하게 한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은 바로 그런 용기와 기개의 표상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에 투입됐던 해군 UDT/SEAL대원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석해균 선장과 UDT/SEAL대원들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박지원의 길을 갈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전자(前者)의 길은 위험하고 희생이 따르는 길이다. 과거 혼블로워의 대영제국이 걸었던 길이고, 지난 60년간 우리 선배세대가 택했던 길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그 길을 택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평안하고 번영을 누리며 세계 속에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

 
후자(後者)의 길은 당장은 편하고 달콤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 길을 택한다면, 우리 후손들은 비겁하고 나약한 존재가 되어 지구촌에서 조롱을 받으며 치욕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석해균의 길과 박지원의 길 가운데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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