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나가사키 원폭투하

(연합뉴스=장재은 기자) 미국의 1950년대 핵공격 표적을 나열한 문건이 공개돼 냉전시대의 잔혹한 핵전쟁 시나리오가 드러났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는 최근 '1959년 핵무기 필요성 연구'라는 제목이 붙은 800쪽짜리 문서를 공개했다.

미국 전략공군사령부가 1956년 작성한 이 문서는 국가기밀의 최상위 단계인 1급 비밀로 분류됐다가 최근 기밀에서 풀렸다.

문건에는 소비에트연방(소련), 동유럽 국가, 중국의 각 도시에서 핵 공격을 가할 표적이 숫자코드의 형태로 지정됐다.

가장 섬뜩한 코드는 275번으로, 이는 군사나 산업시설이 아닌 한 도시의 '전체 인구'를 의미했다.

미국 국가안보기록보관소의 선임 분석가인 윌리엄 버는 "인구 밀집지가 표적이 된 상황을 보는 게 참으로 불쾌하다"고 말했다.

천연자원보호협의회의 핵 프로그램 국장인 매슈 매킨지는 이번 문서가 냉전기 미국-소련의 살벌한 대치를 보여주지만 전략 자체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매킨지 국장은 "적의 도시를 파괴하겠다고 겁박하는 것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가장 핵심적인 전쟁 억제 전략"이라고 말했다.

문건에 등장하는 표적 가운데 대다수는 아직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코드가 의미하는 구체적 주소, 시설의 이름을 담은 '폭격 사전'이 아직 기밀에서 해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수함발사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개발되지 않은 1950년대에 미국은 전쟁이 발생하면 소련보다 막강한 공군력을 앞세워 핵무기를 떨어뜨리려고 했다.

공군기지로 소련의 외곽을 포위한 뒤 위급할 때 항공기가 날아가 지정된 '핵 투하 지점'(DGZs·designated ground zeros)을 가면서 하나씩 타격하는 전략이었다.

소련이 선제공격에 나서지 못하도록 최우선 표적은 공군기지로 지정됐고 그다음이 산업기반시설이었다.

핵무기 전문가인 알렉스 웰러스타인은 1959년 당시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는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2만 메가톤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은 향후 1~2년 동안 핵무기를 그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NYT는 이번에 공개된 문건이 전투에서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과 관련해 시의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군이 민간인 피해 우려 때문에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최대 거점인 시리아 락까를 섣불리 폭격하지 못하는 상황을 소개했다.

전쟁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민간인 보호 원칙이 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군사전략적 이유로 자주 깨지곤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도 연합군은 민간인 보호 원칙을 내세웠으나 군사적 필요성 때문에 도시를 폭격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드레스덴, 일본 도쿄를 폭격한 데 이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까지 투하했다.

핵무기 정책 전문가인 스티븐 슈워츠는 "이번에 공개된 문건이 솔직히 음산하고 섬뜩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을 포함한 미국인들이 핵무기에 대해 점점 무지해지는 상황에서 나온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핵은 믿을 수 없는 파괴력을 지닌 비범한 무기"라며 "표적이 담긴 문건은 과거 역사이겠지만 핵무기의 존재는 아직 역사가 아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