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고미혜 기자) 우리나라는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으로 올해 남녀 비율이 역전돼 '여초'(女超) 사회로 전환했다. 1990년대 116.5이던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최근 105.3의 '정상'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20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출생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한 국가였던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추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시간) '한국은 경제 성장과 사회 구조를 위협하던 성비 불균형의 물결을 어떻게 되돌렸는가'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성비 '유턴'에 성공한 우리나라의 사례를 집중 조명했다.

중국과 인도를 포함해 극심한 성비 불균형이 나타나는 나라들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게 추세 전환에 성공할 수 있던 요인으로 이 신문은 산업화와 도시화, 교육, 여성운동 등을 꼽았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시기를 거쳐 80∼90년대까지 한국은 대표적인 남아선호 국가였다. 1980년대 태아 초음파 검사가 보편화하면서 여아만 골라 낙태하는 일도 많아졌다.

김암(60)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WSJ에 "임신부가 둘째도 딸이라는 소식을 들으면 울음을 터뜨렸고, 셋째도 딸이라는 소식을 들으면 거의 공황상태에 빠지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골라 낳기'의 결과로 1990년 셋째 아이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93명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그 무렵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여성운동도 힘을 받게 됐고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정부도 태아 성감별을 엄격히 금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여성운동가들의 오랜 투쟁 끝에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점차 옅어졌다.

WSJ는 한국의 기업과 정치 고위직에 여전히 여성이 드물고, 남녀 소득 격차가 매우 크지만, 적어도 부부가 아들을 반드시 원하는 문화는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딸만 4명 둔 임기옥(64) 씨의 입을 통해 "한국엔 '딸 둘이면 금메달'이라는 속담이 생겼는데 친구들은 난 다이아몬드 메달을 딴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WSJ는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해 아시아에서 1억 명 이상의 여성이 낙태와 영아살해, 방치 등으로 사망하고 있다. 이는 인권뿐만 아니라 인구학적으로도 재앙"이라며 "여전히 남아 선호사상이 강한 중국과 인도에 한국의 극적인 변화가 중요한 교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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