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노효동 특파원) 일본 우익세력이 최근 미국의 학자와 전문가들을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전면 부정하는 서적들을 전방위로 배포하며 과거사 왜곡 시도를 중단하기는커녕 가속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총재로 있는 집권 자민당이 전담조직을 꾸려 또다시 과거사 검증에 나선 것과 맞물려 지난 8·15 전후 70년 담화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움직임이라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D.C와 주요 대학에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제를 다루는 교수와 학자, 전문가들에게 위안부 문제가 조작됐다는 내용이 담긴 두권의 서적이 개별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두 권의 서적은 일본 우익을 대변하는 산케이 신문사가 제작한 '역사전쟁'(History Wars)과 반한(反韓) 성향의 평론·저술 활동으로 한때 한국에 입국이 거부된 적이 있는 오선화 다쿠쇼쿠(拓殖)대 교수가 저술한 '극복하기:왜 한국은 일본 때리기를 중단해야 하는가'이다.

지난달 초부터 집중적으로 배포된 두 권의 서적에는 일본의 대표적 우익인사인 이노구치 구니코 참의원의 서한이 첨부돼있어 일본 우익세력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이노구치 의원은 서한에서 "국내적인 정치적 야망을 품고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부정확하게 왜곡하려는 개인들로 인해 불행한 환경이 조성돼있다"며 "이에 따라 우리는 한 언론사와 한 학자로부터 받은 서적들을 발송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산케이신문의 '역사전쟁'은 미국 내 한국과 중국의 단체들이 위안부 문제를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비유하면서 이를 미국 공립 교과서에 반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발견된 문서들을 보면 일본 정부가 한국 여성을 강제로 동원한 적이 없으며, 이들은 민간업자들에 의해 고용된 것"이라며 "그러나 이들이 강제로 성노예를 당하게 됐다는 잘못된 사실이 전 세계로 유포되면서 일본인들의 명예가 실추되고 일본의 국익이 치명타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특히 '성 노예'(sex slaves)라는 용어를 공식으로 사용하는 미국을 '일본의 적'(enemy of Japan)으로 규정하고 있다.

올 상반기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역사학자들의 집단성명을 이끌어낸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학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에 "미국 국무부가 '성노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미국을 일본의 적이라는 식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이 같은 주장의 이면에는 비도덕적이고 인종주의적이고 비열한 천성이 깔려있다"고 비판했다.

더든 교수는 "지금 공공외교라는 미명 하에 진행되는 이 같은 움직임은 이상한 정책적 실패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우려하는 증오행위"라며 "지금 일본의 동료학자들은 공포에 질려있거나 크게 화가 나있다"고 강조했다.

데니스 핼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원은 "해당 서적은 우리가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이 전혀 반영돼있지 않다"며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위안부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두 서적은 비단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수백여명의 교수와 학자, 전문가들에게도 발송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든 교수는 "나 개인적으로 8권이나 받았다"며 "이 서적들은 미국은 물론이고 호주와 일본,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지에 있는 동료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배포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적 발간과 발송비용을 구체적으로 어떤 기관이나 단체가 지불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산케이신문의 '역사전쟁'은 미국에 등록된 '역사적 진실을 위한 글로벌 동맹'이라는 단체가 배포 과정에 관여돼있다고 한 소식통이 전했다.

과거사 외교전의 주무대였던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본 우익들의 이 같은 과거사 왜곡 드라이브에 대해 한국도 보다 깊은 경각심을 갖고 다각적인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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