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까지 김정일의 특별열차는 중국에서 별도로 주문제작해서 들여온 호화열차들이었다. 북한의 모든 여객열차들은 지붕이 풀색이지만 특별열차의 지붕은 하얀 색깔로 차별화됐다. 견인기도 국산이 아닌 중국산인데 앞뒤로 두 대씩 4대가 달려있다.
 
이런 열차들이 지나가면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이 이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호 교란전술을 위해 북한에는 똑 같은 특별열차가 4~5대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한 대는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 전용열차이다. 김정일의 클래식 예술단인 이 공훈합창단의 규모는 연주가들과 합창단 모두 합쳐 430명이나 된다.
 
전국에 널려있는 김정일 특각들이나 별장들로 이동 공연을 하자면 사람은 물론 악기들과 무대장비들까지 통째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8년에 합창단에 전용열차를 두게 했다. 다른 한 대는 호위사령부가 갖고 있는데 김정일이 부르면 단 몇 사람을 위해서도 그 열차가 움직인다. 혹은 전국대표자회의 참가자들의 평양이동을 위해서도 사용된다.
 
2000년 나도 그 열차를 타고 강원도 원산에 있는 김정일 갈마초대소로 갔던 적이 있다. 당시 통전부 임동옥, 채창국 부부장, 김용순 비서와 함께 몇 명의 통전부 직원들을 태운 열차는 평양시 용성역에서 출발했다. 북한에는 김정일 특각들과 별장들이 있는 곳마다 김정일 전용역전들이 있다.
 
특별 여객열차에 오르면서 호기심에 여기저기 살펴보니 곳곳에 북경이란 빨간 색깔의 글자가 보였다. 실내는 하얀 색깔로 통일돼 있었고 창문들 마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좌석식이 아니라 침대 식으로 돼 있었는데 침대 밑의 미닫이문을 열면 일인용 모포와 베개가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룸 형식의 침실이 되어야 하지만 감시가 가능하도록 오픈돼 있었다.
 
객실에는 군인들이 양쪽 출입구, 그리고 중간에 두 명, 이렇게 총 네 명이 배치 돼 있었다. 열차가 출발할 때쯤 스피커에서 이 열차 안에는 군법이 적용된다며 누구든 군인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특히 4가지 요점을 강조했다. 커튼을 절대 열지 말 것, 차창 밖을 내다보지 말 것. 목적지까지 잠을 잘 것, 화장실로 이동할 때는 군인을 부르고 함께 동행 할 것이었다.
 
저녁에 식사하러 식당 칸으로 줄 서서 갔는데 김용순 당 비서나 임동옥 같은 당 제1부부장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음식은 뷔페식이어서 그 덕에 주방을 볼 수 있었다. 주방시설은 모두 일본 미즈비시제품이었다. 화장실에 가보니 거기도 온통 미즈비시였다. 겉만 중국산일 뿐 부품이나 시설은 일본 미즈비시 같았다.
 
1999년 김정일의 철도정상화 지시에 의해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에 대한 전국적 지원이 있었다. 무역성을 비롯한 북한의 각 외화벌이 기관들에서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에 일정금액의 외화를 지급하도록 의무화했다. 당시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은 대외적으로는 견인기 30대 생산목표를 다짐했지만 사실 그 돈으로 김정일 특별전용의 방탄열차를 만들어 선물했다.
 
김정일이 2002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일본 언론들은 김정일의 전용열차가 괴한들의 총격테러를 받았다고 대서특필했다. 그 근거로 김정일의 특별 전용열차 외벽 한 부분에 총탄공격으로 의심되는 미세한 구김흔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것은 러시아로 출발하기 전 김정일이 직접 시험해본 흔적이다.
 
김정일은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에서 만들어 시험운행까지 끝낸 특별열차를 둘러보고 방탄효과를 확인해 보기 위해 옆에 경호원이 들고 있던 자동총으로 직접 사격을 했다. 그 결과에 만족한 김정일은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 전체 직원들에게 감사장을 주었다.
 
또한 기사장과 담당 설계기사 두 명에게 영웅칭호와 고급아파트를, 나이가 들어 은퇴 수속 중이던 설비 담당 부지배인에게 평생직함을 주었다. 그러나 김정일의 자동총 발사시험 소문이 그 사람들 입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자 한동안 보위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특별열차는 3대 이상 존재해야 운영정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 국산 방탄열차도 최소 3대는 될 것으로 본다. 결국 이전의 소유물들까지 합치면 김정일 한 사람을 위한 특별열차만 해도 최소 7~8대 정도는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탈북시인 장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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