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추진하는 대형 국책사업들이 지역이기주의에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성과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최고의 효율성을 따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접근이 지역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그 중심에는 정치인들이 서 있다.

 

패턴은 언제나 같다. 정부가 사업 내용을 발표하면 각 지역이 유치경쟁에 돌입하고 최종 입지가 선정되면 탈락한 지역이 반발하는 식이다.

 

지역균형발전을 얘기하며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물고 늘어지면서도 정작 유치실패에 대한 책임에는 등을 돌린다.

 

유치 과정에선 삭발, 단식, 사퇴의사 등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 “정치생명을 걸겠다”고도 하고 “자리를 걸겠다” “책임 지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유치에 실패한 뒤 국회의원직이나 지자체장직에서 사퇴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치에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자기반성도 없다. 정치인이 말하는 ‘책임’은 점잖게는 대안모색이고, 격해지면 퍼포먼스성 물리적 투쟁이다.

 

최근 발표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선정,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문제도 똑같다.

 

15일 있었던 과학벨트 입지 발표. 충청과 영남, 호남이 경쟁했지만 결국 충청권 유치로 끝났다.

 

발표 전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단식하고 이상효 경북도의회 의장은 삭발을 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정치생명을 걸겠다”던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아직까지 사무실에서 단식만 하고 있다.

 

앞서 13일 LH가 경남 진주로의 일괄이전이 확정됐을 때에도 전북 전주 유치실패 책임자는 실종됐다.

 

과학벨트 조성에만 열을 올리다 뒤늦게 LH 유치경쟁에 돌입한데다 효율성과는 무관하게 ‘분산배치’를 주장하면서 경쟁력 자체가 떨어졌음에도 오로지 정부 탓만 하고 있다.

 

진주 일괄유치안과 전주의 분산배치 주장이 팽팽할 때 목숨까지 내놓을 듯했던 기세 역시 온데간데 없다.

 

유일하게 작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나서며 ‘전주 일괄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운천 전 최고위원만이 “당 최고위원은 이미 사표를 냈고,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 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정도다.

 

지난 3월30일 정부가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했을 때도 그랬다. 선언 전에는 삭발이나 단식,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특히 김범일 대구시장은 유치에 실패할 경우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했다. 한나라당 탈당 내지는 시장직 사퇴가 점쳐졌다. 그런데 백지화가 발표된 후에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같은 문제들은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지역갈등만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포퓰리즘에 젖어 있는 현대 정치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실제 국책사업 유치에 실패한 지역구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내가 봐도 이건 안 된다. 민심이 그런데 어쩌겠느냐’고 말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책임도 못 지면서 이러쿵저러쿵 말로만 하는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면서 “결국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것도 크게는 전체 국가의 이익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스파인더 김의중 기자 zerg@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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