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격언에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지는 못 한다.”는 말이 있는가하면, 동양에는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으로 세상에 가을이 온 줄 안다.(梧葉一落知天下秋 )”는 시구가 있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어떤 변화에는 이를 알리는 조짐(兆朕)과 알음알음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변화의 조짐이나 사태발발 및 진척의 단서를 징후(徵候)라고 하여 변화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여 위기관리 및 적 도발에 대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징후분석(徵候分析)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북한의 동정이나 행태관련 징후를 포착, 분석 평가 유추 해석하는 데에는 북한내부로부터 입수된 정보나 자료보다는‘노동당선전선동부’의 치밀한 계획과 엄격한 통제 및 감시를 거쳐 의도적으로 외부에 송출하는 신문방송통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지만, 보도내용이나 행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면 새로은 견해나 시사점을 발견해 낼 수도 있다.


21C 문명사회에서 원시적 3대 세습독재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이 아직까지 존속하고 있는 주된 기반은 ▲사교(邪敎)집단을 능가하는 우상화 ▲체계적이고 치밀한 전 주민 학습세뇌 ▲엄격한 조직/통제/감시 및 폐쇄체제 ▲ 무자비한 처벌 및 무제한의 공포통치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2011.12.17)후 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김일성 김정일주의 고수, 백두혈통의 순수성 견지, 핵 무력 강화와 자본주의사상배격 등을 골자로 하는‘노동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2013.6)’을 마련한데 이어서 장성택을 반당반혁명종파분자 세도가로 몰아 처형(2013.12.13)하는 등 표면상 유일적 영도체제 확립을 꾀해 왔다.


북한은 정치사상적 통일단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고규범인 당 10대원칙은 물론 노동당규약(2012.4.12)에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교양을 강화하며 자본주의사상, 봉건유교사상, 수정주의, 교조주의, 사대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동적, 기회주의적 사상조류들을 반대배격하며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견지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 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맑스-레닌주의 혁명원칙에 입각한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정일 선군주의”이외에 일체의 정치사상이념을 자본주의와 잡사상(雜思想)으로 규정, 자본주의 잡사상 풍조를 황색(黃色)바람이라고 배격하면서 이의 침투를 차단하기 위해 정치사상적 모기장을 치라고 강조해 왔다.


이런 까닭에 北의 보도는 실시간 사실전달 보다는 수령. 당. 혁명에 유리하도록 사실을 가공, 진리를 창작하여 매스컴을 총동원 선전선동을 통해 인민대중을 학습세뇌 시켜 왔다. 따라서 北에서 보도는 ‘NEWS’의 개념보다는 ‘PROPAGANDA(정치사상선전)’소재로 만 용도가 제한되기 때문에 속보성도 사실성도 의미가 없는 조작 된 구문(舊聞)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북한 유일의 관영통신인 ‘조선중앙통신’이 사실과 동떨어지게 왜곡되고 각색된 내용이기는 해도 이례적으로‘신속보도’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17일 판문점에서 아시안게임참가 관련 남북실무회담이 개최 됐다는 사실을 당일에 보도한데 이어서 19일에는 실무회담이 결렬된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실무회담 북측대표단 단장 담화를 보도하는가하면, 20일에는 김정은이 최룡해, 김양건, 황병서, 이영길, 현영철 등 당 및 군 고위간부를 대동하고 남자축구대표팀 평가전을 관람하면서 아시안게임참가는 남북관계개선과 불신해소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가하면, 18일자 중앙통신은 16일자 CBS방송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2011년 5월 인터넷에 공화국을 찬양하는 글을 올려 여러 차례의 기소 공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화국을 찬양하는 구호를 외쳐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며 ‘남조선주민 재판정에서 공화국을 찬양’ 제목으로 보도를 하였다.


아시안게임 관련 보도는 <남측이 고의로 회담을 결렬시키는 등 불순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남북관계개선과 불신해소 차원에서 아시안게임참가라는 통 큰 결단에 의한 시혜적(施惠的)조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남측의 북한 아시안게임참가에 대한 부당한 태도를 집중부각, 남한 내에서 <6.15인정 10.4 이행>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축구대표 팀 평가전에 그동안 행적이 드러나지 않던 김양건을 대동했다는 것은, 아시안게임 참가 결과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경우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 씌워 제거하려는 포석일수도 있다고 본다.


노동당대남담당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으로서 당 내외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가진 김양건은 이미 제거 된 장성택과 서울을 방문(2007.11.29~12.1)하여 노무현을 면담하는 등 전력이 있어 이를 실패의 책임과 연계, 장성택 잔당을 소탕하겠다는 암계(暗計)가 깔린 일석이조의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 남한 재판정에서 ‘공화국만세’ 소동이 일어났다는 보도는 얼핏 보기에는 <남한 민심을 왜곡 과장하여 김정은에게 아부>해온 습성을 드러낸 것 같지만, 이를 곱씹어 보면 어떤 다른 의도와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건성박수를 쳤다는 하찮은 이유로 김정은의 후견인이자 섭정역할을 해온 고모부 장성택까지 반당반혁명종파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을 씌워 체포(?) 된지 나흘 만에 형체도 알 수 없이 도륙하는 공포의 지옥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남한 법정 풍경과 사회적 관용 풍토를 북한 주민에게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사진이나 이름이 실린 신문지 쪽을 무심코 깔고 앉아도 정치범으로 몰려 생지옥 같은 수용소로 끌려가야 하는 북한 주민에게 3년이나 끌어 온‘남조선 재판정에서 공화국만세’ 소식은 이 지구상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의 몇 가지 보도로 북한의 변화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차단하고 잡사상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모기장이 뜯겨지고 있다는 치명적 변화의 조짐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북의 원시적 3대 세습폭압독재체제를 떠받들어 준 우상화, 공포, 폐쇄, 통제감시라는 기둥이 부러지고 벽이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3대 세습체제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뜻하는 징후(徵候)일 가능성 또한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백승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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