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이 핵단추를 누르겠다고 난리를 치던 2013년 3월24일 記者는 <알카에다 수괴, 빈 라덴 사냥의 내막>(2013년 3월24일자 보도)을 다룬 영문 번역 기사와 함께, 2008년 5월 작성한 <김정은 암살, 기술적으로 문제없다> 등 2개의 기사를 <조갑제닷컴>에 게재했다.

그러자 북한은 3월26일(2013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남한 언론이 “빈 라덴에 대한 살해작전과정을 소개하면서 저들이 작성한 한미련합군 작전계획에는 미제침략군과 남조선괴뢰군이 보유하고 있는 살인타격수단과 방법으로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해치기 위한 악랄한 작전계획까지 포함되여있다고 광고하였다”라는 것이었다.

같은 날 북한은 ‘1호 전투근무태세’에 돌입했는데, 우리 軍 당국은 이것이 북한의 가장 높은 수준(?)의 전투준비태세라고 밝혔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인데 문제의 1호 전투근무태세는 전쟁준비가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이나 사적비-기념비들에 대한 24시간 철통경비였다. 

군사학의 기본은 허허실실(虛虛實實)이며, 敵이 상상도 못하는 부분(취약점)을 쳐서 敵의 전쟁의지를 초반부터 무력화하는 것이다. 북한의 싸구려 무인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김정은 집무실을 불시에 박살내거나, 평양 중앙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정확히 공격하는 것이다.

때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으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 2014년 4월8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발표 성명 전문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대응의지를 실제적인 군사적행동으로 과시할 것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겨냥한 미국의 핵전쟁소동은 위험계선을 넘어 실전단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3월 25일에도 미국은 아침 8시경 괌도 앤더슨공군기지에 전개되여있는 핵전략폭격기 《B-52》편대를 남조선지역 상공에 불시에 들이밀어 11시 50분경부터는 공화국북반부의 종심대상물들을 가상한 실전 핵타격 연습을 강도 높게 벌리면서 그것을 알라는 듯이 내놓고 공개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남조선의 [보수언론]들까지 내세워 2010년에 있었던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살해작전과정을 소개하면서 저들이 작성한 《한미련합군》작전계획에는 미제침략군과 남조선괴뢰군이 보유하고있는 살인타격수단과 방법으로 감히 우리의 최고존엄을 해치기 위한 악랄한 작전계획까지 포함되여있다고 뻐젓이 광고하였다.

지어 우리의 최고존엄을 해치기 위한 작전은 군사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으며 이 시각도 관련된 우리의 모든 행동을 정밀감시하고있다고 하면서 지금은 《수세적인 대북정책》이 아니라 《공세적인 대북정책》을 펼 때라고 줴쳐댔다.

현 괴뢰당국자들도 리명박역도처럼 《천안》호침몰사건을 또다시 우리와 억지로 련계시키고 연평도포격전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같은 성격의 《국지도발》이 재발된다면 평양을 비롯한 공화국북반부의 이르는 곳마다에 모셔져있는 대원수님들의 동상을 미싸일로 정밀타격할것을 계획하고있다고 함부로 고아댔다.

그러면서 이미 그 위치와 크기,특징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데 기초한 《제거우선순위목록》까지 만들어놓았다고 하늘무서운줄도 모르고 짖어대고있다.

이 모든 움직임은 우리의 인공지구위성발사와 지하핵시험을 기화로 벌어지고있는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을 비롯한 온갖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적대행위가 단순한 위협공갈단계를 넘어 무모한 행동단계에 들어섰다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사태의 엄중성은 이러한 무모한 준동이 미국에 의하여 고안된 대조선《제재결의》가 온갖 적대세력들과의 공모결탁속에 강도높은 행동으로 옮겨지고있는 것과 때를 같이하고있다는데 있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조성된 현사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최종결심을 내외에 천명한다.

1.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대응의지를 실제적인 군사적행동으로 과시하게 될것이다.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다.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존엄이 여지없이 침해당하고 미국의 핵위협과 공갈이 실전행동으로 번져지고있는 험악한 현실을 더이상 묵과할수 없다는것이 우리가 찾은 명명백백한 결론이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지금 이 시각부터 미국본토와 하와이,괌도를 비롯한 태평양군작전전구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과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의 모든 적대상물들을 타격하게 된 전략로케트군부대들과 장거리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포병군집단들을 1호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게 된다.

2. 상전의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동조하여 춤추는 남조선의 현 괴뢰당국자들에게도 우리 군대의 초강경의지를 물리적행동으로 보여주게 될것이다.

그 무슨 《원점》타격과 《지원세력》,《지휘세력》에 대한 응징의 기회라는것을 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망상은 없을것이다.

첫 순간타격에 모든것이 날아나고 씨도 없이 재가루로 불타버리게 된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북남관계를 파국에로 몰아넣고 평화번영의 길을 5년이나 가로막은 전 집권자의 매국배족행위가 현 집권자에 의해 그대로 지속되는것을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는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드놀지 않는 립장이다.

3.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 진보적인류에게 날강도 미국의 강권과 전횡을 반대하는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설것을 호소한다.

나라가 크고 군사력이 우세하다고 하여 저지르는 불의가 정의로 되는것은 결코 아니다.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결의도 공정성을 잃으면 그것은 벌써 불의의 길로 떨어지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국제적인 범죄로 된다.

불의는 일시이며 꺼지는 불길이다.

그러나 정의는 영원하며 타오르는 불길이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세계의 량심앞에 미국의 강권과 전횡,공정성을 잃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결의》에 맹종할것이 아니라 자주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에 적극 합세해나설것을 호소한다.

승리는 자주권수호에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진보적인류에게 있다.

주체102(2013)년 3월 26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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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1] 알카에다 수괴(首魁), 빈라덴 사냥의 內幕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빈라덴 추적

번역/김필재(조갑제닷컴/2013년 3월24일 보도)

    [사진] 미국은 그동안 빈라덴의 심복인 아부 야흐야 알리비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알리비는 미군의 이라크 공격 당시 체포됐다가 바그람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빈라덴의 추적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2010년) 7월 CIA는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혼잡한 도로 속에서 일본산 스즈키(Suzuki) 자동차를 포착했다. 그리고는 문제의 차량 번호판을 받아 적었다.

    당시 차량에는 빈라덴의 심복이 타고 있었다. 이후 CIA는 수개월 동안 파키스탄 중부 지역을 샅샅이 탐색하며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결국 CIA는 비포장도로의 끝자락에 위치한 빈라덴의 안가(安家)를 찾아냈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안가는 파키스탄 수도에서 3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로부터 7월 뒤 달빛 없는 칠흑 같은 밤, 4대의 헬기로부터 79명의 美특수부대 요원들이 안가에 착륙했다. 그리고 곧 바로 총격전이 시작됐다. 헬기는 뜨지 않고 현장을 지켰다. 파키스탄 정보부 요원들은 美특수부대의 현장진입과 함께 자리를 떴다.

    미군의 특수작전 결과 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 중에는 머리에 총을 맞아 피로 뒤범벅이 된 키가 크고 수염이 난 남자가 있었다. 네이비실(Navy Seal) 요원은 그의 얼굴을 카메라로 찍은 뒤, 얼굴인식 프로그램에 업로드(upload) 시켰다.

    사망자는 빈라덴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해서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빈라덴의 사냥은 막을 내렸다. 미국의 제1의 적(敵) 빈라덴의 주검은 헬리콥터에 실려 바다의 수장 됐다.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볼일도 없게 됐으며 두려워 할 일도 없게 됐다.

    3천여 명의 무고한 뉴욕시민들을 불에 태워죽인 장본인을 찾는 과정에서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미국은 결국 빈라덴을 사살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의 힘겨운 한 장을 끝마쳤다.

    오랜 세월 끊임없는 정보실패로 지탄을 받아온 CIA를 중심으로 한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는 빈라덴의 사살로 다시금 명성을 회복했다.

    빈라덴의 사살은 무슬림 국가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해온 군(軍)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승리를 안겨주었다. 국가 안보 문제와 관련해 지도력을 의심받아온 미국 대통령은 빈라덴의 사살로 그의 확고한 결단력이 역사책에 실리게 될 것이다.

    [사진] 빈 라덴 사살 작전요원들은 미국의 '전사(戰士) 집단'이라 불리는 해군 특수부대요원 '네이비실(Navy SEAL)' 소속 군인들이었다.

    이번 작전은 동(東)유럽에 위치한 알카에다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한 CIA의 취조를 포함, 끊임없는 정보활동의 결과가 만들어낸 쾌거다. 알카에다 수감자들에게서는 때때로 중요한 정보가 습득되기도 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중동 지역에 산재한 알카에다 요원들의 전화와 e-메일을 도청했다. 이와 함께 첩보위성을 동원해 빈라덴이 숨어있는 아보타바드의 안가를 수 없이 촬영해 작전개시의 적기(適期)를 토의했다.

    백악관과 정보기관 그리고 펜타곤의 관리들은 월요일의 작전을 앞둔 지난 수 주 동안의 활동이 피를 말리는 것 같았다고 묘사한다.

    작전에 참여한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영화 ‘블랙호크 다운’처럼 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 오고갔다”고 한다. 미국은 1993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2대의 헬리콥터가 민병대의 공격으로 추락, 19명의 사상자를 내며 특수작전이 실패로 끝난 경험이 있다.

    이번 작전과 관련, 美행정부 당국자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빈라덴이 안가에 숨어 있는 것이 확실한지 좀 더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또 하나는 좀 더 위험 부담이 적은 공습(空襲)을 하자는 의견이었다.

    마지막에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죽음을 확인할 수 없는 공습 보다는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방안에 손을 들었다. 이 같은 대담한 선택은 곧장 작전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이어졌다.

    총 4대의 헬리콥터가 사용되는 작전으로 두 대의 헬리콥터가 공격 팀이 되고 나머지 두 대가 공격 팀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제1공격 팀이 작전에 실패했을 경우 지원팀이 공격 팀이 되어 작전을 성공시키는 계획이었다.

    일요일 오전, 미군의 헬리콥터는 파키스탄 영내에 진입했다. 이 시간 오바마 대통령과 보좌관들은 작전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백악관 상황실로 집결했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무표정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봤다.

    존 O. 브레넌 백악관 대(對)테러담당 보좌관에 따르면 당시 손에 묵주를 쥐고 있던 조셉 R. 바이든 부통령이 “몇 분이 며칠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진]백악관 상황실에서 빈라덴 사살을 지켜보는 오바마 대통령과 참모진의 모습. 

    이번 작전의 코드네임은 ‘제로니모’였다. 레온 파네타 CIA국장은 포토맥 강 건너 CIA본부로부터 자료를 송출 받아 비디오 스크린을 보며 파키스탄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설명했다.

    파네타 국장은 “우리 요원들이 목표물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다.

    파네타 국장은 “제로니모가 시야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몇 분이 흐른 뒤 그는 말했다.

    “적장(敵將) 제로니모가 사살됐다.”

    (Geronimo EKIA: Enemy Killed In Action)

    이 순간 백악관 상황실에 침묵이 흘렀다.

    조금 뒤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잡았다”

    (We got him)

    비밀작전의 두 주역(主役)-파네타 CIA 국장, 맥레이븐 특수작전 사령관

    [사진] 빈라덴 사살 작전을 주도한 리온 파네타 CIA국장과 윌리엄 맥레이븐 美특수작전사령관

    빈라덴은 9.11 테러 발생 이전부터 美정보기관이 지목한 요주의 인물이었다. CIA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카에다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정보보고서를 작성해 놓은 상태였다.

    미국은 2002년 이전부터 해외 각지의 ‘비밀감옥’(secret overseas prison)내 테러범들을 심문해 빈라덴의 무장조직과 심복들, 그리고 자금책에 대한 정보를 조합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美정보기관은 미국 내 수감된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통해 ‘빈라덴의 소재를 알고 있는 인물’과 관련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었다.

    9.11테러를 주동한 칼리드 쉐이크 모하메드와 아부 파라즈 알리비 등 2명의 알카에다 고위 조직원들은 문제 인물의 가명(假名)을 듣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뗐다.

    심문과정에서 이들의 행동을 의심한 美정보기관은 두 용의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포착했고, 의문의 사나이가 매우 중요한 인물임을 알게 됐다.

    빈라덴 사냥이 진행되면서 미국의 정보기관은 테러와의 전쟁과는 무관한 전선(戰線)에서 타격을 받았다.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WMD)와 관련된 서투른 정보보고서 문제, 그리고 테러범들에 대한 미국의 물고문 및 기타 가혹행위가 초점이 되어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2005년 접어들면서 CIA 내부에서는 빈라덴의 검거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CIA의 고위 관계자들은 대테러 작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명령했다.

    이것이 바로 ‘캐논볼 작전’(Operation Cannonball)이다. 미국은 이 작전을 통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현장 요원(case officer)을 대폭 확충했다.

    늘어난 현장 요원들을 통해 CIA는 마침내 빈라덴 심복의 성(姓)을 알게 됐다.

    이후 미국의 최고 정보수집 기관이라 할 수 있는 NSA를 통해 목표 인물의 가족 및 친지와의 전화 통화 및 e-메일을 탐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은 빈라덴 심복의 이름을 모두 알게 됐다.

    미국은 지난해 7월 페샤와르(파키스탄 북부)에서 한 대의 차량을 지목했다. 이후 수 주간에 걸친 감시과정에서 문제의 인물이 아보타바드 깊숙한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착했다.

    이를 확인한 정보요원들은 자신들이 뭔가 큰 것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들은 문제의 지점이 빈라덴의 은신처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빈라덴의 은신처가 험준한 산 속 동굴일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같은 추측과 달리 빈라덴은 12피트 높이의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3층짜리 가옥에서 머물고 있었다.

    안가(安家)를 둘러싼 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으며, 2명의 보안 요원이 지붕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윽고 리언 파네타 CIA국장은 오바마 대통령,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게이츠 국방 장관, 그리고 행정부 내 고위 국가안보 보좌관들을 모두 만났다.

    이날 파네타 국장은 바이든 부통령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행정부의 한 관리는 빈라덴의 은신처를 찾은 것에 대해 마치 섬광이 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오랜 동안 그의 거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그의 은신처를 찾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 분석관들은 빈라덴이 안가에 실제로 있는지의 여부를 논의했다. 이어 수 주 간에 걸쳐 파네타와 그의 휘하 정보요원들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내부 토의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파네타 국장은 과감한 전략을 옹호했다.

    반면 일부 CIA관리들은 빈라덴의 부하들이 자신들의 위치가 미국에 의해 포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찬스가 날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들어 신중론을 폈다.

    미국의 첩보위성은 수개월에 걸쳐 빈라덴의 거처에 대한 영상 정보를 수집했으며, NSA는 안가(安家)를 오가는 통신정보를 수집했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빈라덴의 거처는 전화선과 인터넷이 없었다. 그들은 보안을 위해 쓰레기도 자체 소각을 했다. 지난 2월 파네타 국장은 CIA본부가 위치한 버지니아 랭글리에서 맥레이븐 특수작전사령관(JSOPC, 해군소장)을 만나, 빈라덴 은신처에 대한 군사공격 계획을 논의했다.

    맥레이븐 사령관은 특수작전의 대가로 CIA요원들과 함께 수주에 걸쳐 작전을 짜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군사적 옵션을 내놓았다.

    1) 헬리콥터를 이용한 특수부대의 공격

    2) B-2 스텔스 폭격기를 이용한 초정밀 폭격

    3) 파키스탄 정보부와 미군의 합동 군사작전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미국의 ‘일급 범죄자’의 최후를 지켜봤다!

    [사진] 네이비실(Navy Seal)은 빈라덴의 은신처와 비슷한 건물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모의 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들 특수부대 요원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어떤 목표를 공격하는 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2011년 3월14일 파네타 국장은 세 가지 군사작전 계획을 들고 백악관으로 향했다.

    CIA 요원들은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빈라덴 거처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의 모든 행적을 모니터링 했다. 그리고 이들 자료를 통해 최종적으로 빈라덴이 안가(安家)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이 실제 군사작전에 돌입할 경우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어떻게 돌변할 것인지에 대한 격론이 오고 갔다. 미국은 지난 1월 CIA요원 레이몬드 데이비스가 파키스탄에서 2명의 강도를 총으로 쏴 죽여 곤혹을 치렀던 경험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일부 보좌관들은 데이비스 요원이 파키스탄 현지인의 총격으로 피살된 것을 예로 들면서 군사작전을 감행하면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3월22일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보좌관들에게서 파네타 국장의 군사공격 계획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격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했다. 다른 보좌관들은 스마트 폭탄을 이용한 정밀 공습 방안을 대통령에게 올렸다.

    며칠 후 정보 분석관들은 빈라덴 은신처 공습을 성공시키기 위해 2천 파운드짜리 폭탄 32개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처럼 공습을 했을 경우 빈라덴의 주검을 확보해 사망유무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헬리콥터를 이용한 군사작전에 무게가 실렸다. 이에 따라 네이비실(Navy Seal)은 빈라덴의 은신처와 비슷한 건물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모의 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들 특수부대 요원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어떤 목표를 공격하는 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지난 주 목요일 오바마 대통령은 안보 보좌관들을 다시금 만났다. 파네타 국장은 보좌관들과 기나긴 토론 끝에 이제 결정을 내릴 시간이 됐음을 알렸다.

    그러나 보좌관들은 이번 작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파네타 국장과 보좌관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했다.

    “지금 당장 내 의견을 말할 수는 없다. 돌아가서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빠른 시간 내에 결정을 내릴 것이오”

    16시간이 흐른 뒤 대통령은 군사작전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 4명의 고위급 안보 보좌관들이 백악관에 모였다. 이들이 브리핑을 하기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작전을 실행에 옮깁시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 기자들과의 만찬을 위한 사전준비를 중단하고 맥레이븐(McRaven)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행운을 빌었다.

    일요일, 파네타 국장을 통해 상황을 모니터 중인 고위급 안보 관계자들과 상황을 전혀 모르는 관광객 및 방문 유명 인사들이 우연히 마주치지 않도록 백악관 관리들은 웨스트 윙 투어를 모두 취소했다.

    [사진] 빈라덴의 파키스탄 은신처

    한 직원이 코스트코(Costco)로 가서 칠면조 피타빵, 찬 새우, 감자칩, 소다 등 먹을 것을 사왔다.

    오후 2시5분, 파네타 국장이 마지막으로 작전의 개요를 제시했다. CIA 국장은 랭글리에서 비디오를 통해 상황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그들이 파키스탄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국경을 넘어(Across the Border)

    특수부대는 아프가니스탄 국경 바로 건너편에 있는 잘랄라바드(Jalalabad) 기지에서 한밤중에 빠르게 이동했다.

    목표는 파키스탄 당국이 정체불명의 병력 침투를 알아채고 무력 대응하기 전에 재빨리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었다.

    파키스탄 시간으로는 월요일 자정이 갓 넘었다. 백악관에 모인 안보 관계자들은 기습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헬기 중 최선두의 헬기 한 대가 저고도로 빠르게 접근하면서, 커다란 폭음과 총성을 주민들이 들었다.

    2마일 거리에 사는 한 여자는 파키스탄 군 기지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빈라덴이 조용하고, 부유한 지역에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네이비실(Navy Seal)은 주거지에 물밀듯이 들이닥쳤고(급습으로 안에 있던 빈라덴 일행이 깼다고 한 미국 정보 당국자는 말했다) 총격전이 발생했다.

    한 남자가 그 곳에 있던 신원불명의 여성을 방패삼아 붙잡고 미군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남자와 여자 둘 다 죽었다.

    두 명의 남자가 추가로 사망했고, 두 명의 여자가 부상당했다. 나중에 죽은 남자 중 하나는 빈라덴의 아들, 함자(Hanza)였으며, 다른 두 명은 급사와 그의 동생이라고 미국 당국자는 확인했다.

    네이비실(Navy Seal) 대원들은 3층에 있는 빈 라덴을 발견했는데, 그는 현지의 헐렁한 튜닉과 샬와르 카미즈라고 알려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빈 라덴은 왼쪽 눈 위에 총을 맞아 사살되기까지 저항을 했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美정부는 빈 라덴의 최후의 순간에 대해서 세부사항을 일부만 밝혔다.

    “빈라덴이 총알을 피했는지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라고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담당관은 말했다. 그러나 익명의 국방부 고위 관리는 빈라덴이 “미군의 총알에 맞아 사망” 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미국 관리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빈 라덴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신병을 확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우리에게 빈라덴을 생포할 기회가 있었고, 빈라덴이 어떠한 위협도 하지 않았다면, 대원들은 그러한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브레넌 담당관은 말했다.

    빈라덴의 부인 중 한 명이 빈라덴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미국 관리들은 말했다.

    특수부대원이 찍은 사진을 안면 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한 결과 빈라덴일 가능성이 95퍼센트로 나왔다.

    이후 샘플을 친척과 비교하는 DNA 테스트에서 99.9퍼센트 일치하는 것으로 판정됐다.

    그러나 특수부대원들은 다른 문제들에 직면했다.

    헬기 중 한 대가 엔진이 꺼져 이륙할 수 없었다. 적의 수중에 넘기기보다 코만도 대원들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안전이 확보된 지역으로 옮긴 후 기기고장을 일으킨 헬기를 폭파시켰다.

    그 시간, 파키스탄 軍당국은 파키스탄 영토 침입에 대한 대응으로 병력을 비상소집했다.

    “파키스탄 軍은 누가 그 곳에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라고 브레넌 담당관은 말했다.

    “다행히도 파키스탄 軍과의 교전은 없었다”

    현지 시간으로 오전 1시10분, 네이비실 대원들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남기고 그 집에서 컴퓨터 하드드라이브들과 획득한 서류들을 갖고 이륙했다.

    2살에서 12살 사이의 9명의 아이들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파키스탄 관리는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독실한 무슬림들이 기분상하지 않도록 24시간 이내에 이슬람식 장례풍습을 따르기로 이미 결정했으나, 빈 라덴은 어느 나라도 시신을 인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바다에 묻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더군다나 미국은 빈라덴 추종자들을 위한 사원을 만드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카에다 수괴의 시신을 씻은 후 전통에 따라 하얀 시트에 놓았다.

    [사진] 일급 범죄자 빈라덴의 시신은 칼빈슨 항공모함(사진)에 옮겨져 수장됐다.

    항모(航母) 칼빈슨호 함상에서 장교가 준비된 종교적 언사를 낭독했고, 동시에 원어민이 아랍어로 통역을 하는 동안 빈라덴의 시신은 추가 달린 시신운반용 부대에 놓였다고 국방부 고위 관리는 말했다.

    시신은 준비된 평평한 판자에 놓여 바다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항공기를 비행갑판으로 끌어올리는 커다란 엘리베이터에서 미국의 일급 지명수배범의 최후를 지켜봤다. <조갑제닷컴/2011년 5월4일>

    번역/정리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관련기사2] 김정은 암살(暗殺), 기술적으로 문제 없다
    北정권 붕괴를 상정한 '공세적'(攻勢的) 對北정책의 필요성

    xxxxx한국 공군이 보유한 對北 종심 타격전력 F-15K(上), 2005년 북한 영공을 휘젓고 다녔던 F-117 스텔스 전폭기.
    현행 한미(韓美)연합군 작전계획에는 유사시 북한의 대남공격이 임박했을 경우 韓美양국군이 보유한 정밀 폭격기술을 활용, 김정은을 암살(暗殺)하는 작전이 포함되어 있다. 

    김정은 암살(暗殺)은 현재 韓美연합군의 군사 기술로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작전을 실행에 옮겼을 경우 이에 따른 ‘리스크’(전면전 가능성)가 워낙 크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김정은의 모든 행동은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대상이다. 만에 하나 허튼 짓을 했다가는 자신이 먼저 저승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수세적 대북정책’이 아니라 공세적(攻勢的) 대북정책을 펼쳐야 하는 시기다. 

    “기억에 남는 임무는 北영공 휘젓고 다닌 것” 
    美스텔스 전투기 조종사 ‘에어포스타임스’ 인터뷰서 언급


    미국이 2005년 이후 실시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에서 스텔스 전투기를 북한 영공에 침투시켜 급기동을 했던 사실이 당시 작전에 참여한 미 공군 조종사에 의해 또 다시 확인됐다. 

    F-117 스텔스 전투기 조종사인 마이클 드리스콜(Michael Driscol) 대위는 최근 미 군사전문지인 ‘에어포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수행해온 임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김정일 독재정권이 통치하는 북한 영공을 휘젓고(buzzing) 다닌 것”이라고 밝혔다. 

    F-16으로 기종을 전환할 예정인 드리스콜 대위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 후 가진 이날 인터뷰에서 F-117의 공식 퇴역과 관련, “전투기에서 내려올 때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임무를 생각하면 까마득할 정도”라며 자신의 숙소에 걸려 있는 F-117을 가리키며 아쉬운 감정을 표현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미국의 대(對)한반도 군사 작전계획은 다섯 가지로 모두 미 태평양사령부(PACOM)가 주관한다. 구체적인 한반도 작전계획으로는 ‘정밀공습계획’(작계 5026), ‘전면적 계획’(작계 5027), ‘개념계획’(작계 5028), ‘북한붕괴계획’(작계 5029), 그리고 전쟁예비 단계로서의 ‘북한동요계획’(작전계획 5030)등이 존재한다. 

    작계(OPLAN)5026, 북한붕괴계획(5029)과 연계 

    이 가운데 작계 5029와 연동된 제한적 초정밀 대북(對北)공습 계획인 ‘작계5026’의 경우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작성된 계획으로 JDAM(일명 ‘스마트 폭탄’)폭탄을 사용, 612~756개에 해당하는 북한의 주요 군사 시설을 정밀 타격한다는 작전계획이다. 

    특히 전면전을 피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계획은 B-2 스텔스 폭격기와 F-117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 북한 전역의 전략 거점들을 동시에 타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작계5026’은 구체적으로 △유사시 전방지역의 북한 장사정포를 정밀 공격해 수도권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북한정권의 수뇌부에 ‘족집게 공격’을 가해 전쟁지휘능력을 조기에 무력화하며 △핵 및 생화학 무기·미사일 기지·공군기지·지휘소 및 통신시설 등을 공격, 김정일 정권의 전쟁능력을 조기에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미 공군은 2005년 6월 F-117 전투기 15대를 김정일이 머물고 있는 ‘특각’ 상공에 출격 시켜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하도록 했다. 제트기가 급강하 할 때 공기를 가로지르는 충격음, 또 급상승 할 때의 애프터버너에 의한 폭발음으로 인해 김정일을 경호하던 호위총국은 이를 미군에 의한 ‘공폭’(空爆)으로 오인해 긴급사태에 대응하기도 했다. 

    北, F-117 영공침투 대응실패·방공체제 결함 드러내 

    이 사건을 최초로 다룬 일본의 ‘사피오’(SAPIO)는 2005년 8월 24일자 기사에서 “F-117의 북한상공 비행은 명백한 영공침범으로 원래대로라면 북한은 목소리를 높여 ‘미제(美帝)비난’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도가 없는 것은 북한 공군기가 긴급발진조차 못하는 실태라든가, 방공 체제의 결함이 내외에 밝혀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기자는 이 사건을 ‘사피오’ 보도를 인용해 국내최초로 다뤘다. 당시 기자의 기사가 모 신문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되자 ‘스텔스기는 애프터버너 소리가 나지 않는다’, ‘찌라시 신문의 기자가 하는 얘기는 믿을 수가 없다’면서 군사매니아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됐다. 

    F-117에 이어 F-22 北영공침투 임무승계 

    그동안 F-117A 전투기가 맡아온 임무는 최신예 스텔스기로 초음속의 기동능력에 첨단 공격 대응능력을 보유한 F-22(일명 ‘랩터’)가 맡을 예정이다. 

    홍콩의 ‘봉황 TV’는 최근 익명을 요구한 대만 군사소식통을 인용, “F-22 8대가 태평양의 괌(Guam) 기지를 떠나 일본 상공에서 한 차례 공중 급유를 받은 후 북한 영공에 침투했다 무사귀환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미 군사전문 연구소인 ‘글로벌 시큐리티’의 존 파이크(John Pike) 소장은 최근 미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번 F-22 전투기의 알래스카 배치로 북한이 더더욱 (남한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행동을 획책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파이크 소장은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력의 균형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더욱 기울고 있다”면서 “이번 F-22 전투기의 알래스카 배치는 이러한 이유를 하나 더 추가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5월6일)

    외신번역/정리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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