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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범민련 前 미주본부 국장) 통일학연구소장은 2012년 6월2일자 칼럼에서 조선인민당의 후신(後身)으로 통합진보당(통진당)을 ‘족보’에 넣었다. 한 씨는 칼럼(제목: 진보당과 통합진보당, 그 승리와 고난의 길)에서 “이 땅의 진보정당사에는 ‘족보’가 있다”면서 “조선인민당-사회노동당-근로인민당-진보당-민중당-민주노동당(민노당)-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긴 역사”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땅에 첫 진보정당으로 등장하였던 조선인민당이 진보적 민주주의자 여운형을 중심으로 창당된 때가 1945년 11월12일이었으니, 이 땅의 진보정당사에는 어느 덧 67년의 연륜이 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봉암의) 진보당이 정치탄압으로 강제해산 당한 이후 민중당이 창당되기까지 31년 공백기가 있었다”며 “31년 공백기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정권 시기와 거의 중첩된다”고 지적했다.

한 씨는 또 인민혁명당(인혁당), 통일혁명당(통혁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구국전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등 공안사건 연루 조직들을 '전위정당'으로 분류했다. 그는 이러한 전위조직들이 “극심한 정치탄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37년 동안 이어졌다”고 했다.

참고로 조선인민당은 1948년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휴회로 들어간 후 ‘48인파’로 불렸던 당내 좌익세력이 당을 이탈, 남조선신민당, 조선공산당과 합당해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을 결성했다. 여운형은 남로당 결성으로 조선인민당이 와해되자 이후 사회로동당을 창당했다.

남로당은 초기 미군정(美軍政)하에서 합법적 공산주의 운동을 하면서 노동자?농민들을 선전?선동해 각종 파업 등을 주도하며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등을 일으켰다.

1946년 정판사(精版社) 위폐사건으로 남로당의 활동이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되자 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대거 월북(越北)했다. 남로당은 1949년 6월 북조선로동당(북로당)과 합당해 조선로동당이 됐다. 조선로동당이 결성되자 박헌영을 주축으로 했던 남로당 세력은 김일성의 지배 하에서 갖가지 명목으로 숙청 및 처형을 당했다.(2013/8/29)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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