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 여권 발급을 거부당하다 지난 1월에야 여권을 받은 탈북자 김덕홍씨에게 국가가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김씨는 북한 노동당 중앙위 자료부실장 겸 여광무역 총사장으로 있다가 지난 1997년 황장엽(85) 전 북한노동당 비서와 함께 남한으로 탈출했다. 

김씨는 지난 2004년 미국 허드슨 연구소의 초청을 받고 북한의 인권침해와 기아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여권을 신청했지만,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소송을 벌인 끝에 4년 만인 지난 1월 여권을 발급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3부(재판장 이준호)는 지난 23일 김씨가 '정부의 여권 발급 거부로 거주·이전의 자유와 사회적 활동에 큰 제약을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씨는 2004년 6월 여권 발급을 신청한 뒤 4년간 5차례나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여권 신청 후 2달간 정부로부터 아무런 답변이 없자, 김씨는 2004년 8월 '여권 발급 거부가 위법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그러나 당시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재판장 김중곤·현 변호사)는 '정부가 답변을 하지 않았을 뿐, 거부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로 소를 각하했다. 

김씨는 다시 '여권 신청에 대한 답변이 없는 것은 위법하다'라는 취지로 항소했다. 1년 후인 2005년 11월 서울고법이 김씨의 손을 들어주자, 외교통상부는 2006년 1월 '답변'을 해줬다. '여권을 발급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또다시 '여권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판결이 내려진 2006년 8월 당시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재판장 박상훈·현 변호사)는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이유가 있을 땐, 여권 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며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정부가 '김씨가 해외여행 중 북한으로부터 테러를 당할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 2007년 5월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서울고법은 '신변 안전에 대한 막연한 우려만으로 기본권이 과도하게 제한돼서는 안 된다'며 김씨의 청구를 받아들였고, 2008년 1월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이번 위자료 배상 판결은 김씨가 지난 2006년 행정소송과 함께 제기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결과다. 

재판부는 '정부가 1년 7개월간 김씨에게 여권 발급 결과에 대해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아 고의로 직무를 유기했고, 여권 발급을 거부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한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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