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쯤 국제구호단체의 요청을 받아 북한의 시골지역에 의료봉사를 간 적이 있다(정확한 지역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은 글속에서 나오는 특정인이 피해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우리 봉사단은 의사 3-4명과 초음파 기계와 알부민 50여병, 그리고 일반 약품을 전달하고 그런 것들의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현지인들을 진료해주는 것이었다. 

그 병원의 규모는 우리의 시골 보건소 정도 되는 규모였으나 현지의 의사는 주로 여성들로 4-5명쯤 되는 것 같았으며, 원장은 5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건물은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있는 허름한 건물이었으나 현관을 들어서면 가운을 걸친 김일성이 만면에 웃음을 짓고 간호사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유화그림이 걸려 있었다.

 우리들의 봉사는 기증하기로 한 초음파 기계를 실제로 환자에게 사용하면서 판독하는 방법과 가져간 약을 처방하였는데, 현지 의사들은 진지하게 배우려는 자세였으나, 초음파를 보는 중간 중간에 잦은 정전으로 인해서 초음파 기계가 고장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작은 부속품 하나라도 고장 나면 그 기계가 모두 작동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로 가벼운 환자들이었기 때문에 1주일 정도의 약을 처방해주었는데 환자에게는 2일 정도밖에 약을 안 준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마도 약을 아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 봉사단이 알부민 50여병을 가지고 갔는데 반 정도는 평양지역으로 보내고 반 정도는 필요할 경우 현지 병원에서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다음날 병실에 갔더니 감색(곤색)의 인민복을 입고 김일성 뱃지를 단 40대 전후의 사람들이 알부민을 꼽고 누워 있는 것이다. 전혀 알부민을 맞을 대상이 아닌데, 아마도 “남쪽에서 좋은 약이 왔다”라는 말들이 돌았을 것이고, 그 지역의 당원들이 누군가에게 빽을 써서 맞고 있었던 것이다. 참 어처구니없는 현상이었다. 뭐라 할 수도 없고..  



봉사를 갔던 지역은 작은 시골이었지만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평양에서 파견되어 그 지역을 관장하는 39세의 최 과장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옆에는 최 과장 수행원쯤 보이는 깡마르고 인상이 고약한 사람이 항상 따라다녔다.

회의를 하거나 식사를 할 경우에는 병원의 원장실을 이용하였는데, 원장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최 과장이라는 사람이 앉고 양옆으로 우리들과 원장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역학관계를 알 수 있는 계기는 오전 진료를 마치고 원장실에서의 점심시간이었다.  오전진료를 마치면 원장실의 탁자에 음식을 가져다 놓고 같이 식사를 하는데, 원장자리에 최 과장이 앉고 양옆으로 최 과장의 수행원 우리들, 원장이 양 옆으로 앉는데 원장자리에 젊은 당원이 앉아있는 것도 이상하게 보이는데, 더 가관인 것은 50대의 여성원장이 39세의 젊은 당원의 시중을 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젊은 최 과장이 원장자리에 앉아서 국수를 먹다가 “이것 좀 싱거운데” 라고 하면 50대원 여성원장은 얼른 식당으로 가서 장을 가져오곤 하였는데, 그런 모습이 우리들에게는 영 불편하였다.

더 우리를 어리둥절 하게했던 말은, 오전진료를 마친 우리 일행들이 식사를 하기 전에 우리들이 “ 오전에 같이 일했던 현지 의사들도 이리 올라 오라 해서 같이 식사 합시다”라고 했을 때, 최 과장을 수행하고 다니는 친구 왈(曰),  
“아니 서로 간에 격이 있는데 어떻게 그들과 같이 식사합니까? 격을 둬야 지요”였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의사의 사회적 위치가 북한에서는 낮은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사회적 위치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자는데 격을 따지면서 거절하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최 과장과 원장이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을 보고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있는 한마디였다.  

봉사 마지막 날 원장과 함께 병원을 나오면서 현관에 걸려 있는 김일성이 간호사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그림을 카메라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왠지 하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 여성원장은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하는 것이다. 자기가 관장하는 곳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장을 사진 찍으라고 해야 할지 하지 말라고 해야 할지를 답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북한이었다.

어떤 이는 아프리카에서도 있었던 자스민 혁명과 같은 시민 혁명이 북한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본 북한의 인민들은 마치 병든 개가 난폭한 주인에게 매 맞고 발로 차이고 해서 주인이 무서워 슬슬 피하는 주눅 든 듯한 개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적어도 지금의 북한 사회에서는 당국에 대한 시위니 항의니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듯하다.
 

흔히들 공산혁명 시작을 할 때 양반과 상민,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자 라는 구호 하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실상은 양반과 가진 자를 쫒아내고 그 자리에 공산당원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일반 인민들은 李朝 시대의 常民이하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북한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金氏 일가의 몰락 이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계기였다.


조갑제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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