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숙청은 이제 확실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의 연행 장면을 고의로 연출해 보일 정도로 김정은은 이번 숙청작업을 작심하고 추진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 만큼 그는 “그래 나 이런 사람이야, 알간? 까불면 다 죽여!”라고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독재자 되기의 고전적 코스를 그는 걷고 있다. 
 
 김정은은 지금 아버지 세상을 자기 세상으로 바꾸고 있다. 아버지 세대의 중신(重臣)들을 내치고 자기 사람들을 심는 탈권작업, 또는 권력회수 작업을 하고 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파가 유소기, 등소평 등을 친 홍위병 혁명에나 비유할까-. 장성택이 유소기 등소평은 아니고 못 되더라도 적어도 "지가 뭐라고 어른 노릇을 해?" 하는 평판은 들었을 수도 있다. "99%의 충신은 있을 수 없다. 100%라야 한다"고 한 이번 발표가 그점을 시사한다. 
 
 장성택 숙청은 북한사회의 나사가 의외로 많이 풀려 있었음을 반증한다. 김정은은 탈북자를 막기 위해 갖은 안간힘을 다 썼다. 남한 드라마를 시청한 주민들을 공개총살 했다. 핵-미사일 공갈과 연평도 포격을 주도했다. 한 때는 마치 개성공단을 폐쇄할 듯 시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장성택을 숙청했다. 숙청하면서 “그와 그 일당이 위험한 종파행위를 했다”고 했다.
 
 한 마디로, 북한사회가 “세게 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속으론 적잖이 부식(腐蝕)돼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김정은으로서는 ”야, 이거 가만 내버려두다가는 내가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되기가 힘들 수도 있갰구나“라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다. 
 
 장성택과 그 계열은 김정은에게 ‘진짜 독재자 되기‘의 좋은 구실을 주었을 것 같다. 독재자는 사람을 많이 죽여야 하는데, 장성택과 그 계열이 “우리를 죽여 주”하는 식의 먹잇감 노릇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종파행위를 했다”는 단죄가 바로 그것이다. “술, 도박, 여자를 탐하고...” 따위는 웃기는 양념이다. 비리를 저질렀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북한의 끗발들, 다 그렇게 살아 온 것 아닌가? 문제의 핵심은 그래서 ’종파‘라는 말에 있다. 박헌영도, 연안파도 다 그 말로 죽였다.
 
 ‘종파’란 무엇인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다. 장성택이 감히 이를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어겼을 리는 없다. 그라고 바보인가? 그러나 다른 눈들이 보기에는 “저것들 까부는데...”라고 보였을 수는 있다. 일설에 의하면 저희들끼리 파티를 하면서 “장성택 동지를 위하여!” 어쩌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정말 그렇다면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던 것일까? 아니면, 별것도 아닌 조그만 꼬투리로 조작된 정치적 희생양이었을 뿐일까? 스탈린의 부하린, 지노비에프 숙청도 노선차이와 희생양 만들기의 섞임이었다. 
 
 북한은 역시 ‘빅 브라더’의 나라다. ‘빅 브라더’는 살인자라야 한다. 살인할 대상이 있으면 좋고, 없을 땐 만들어서라도 죽여야 한다. 장성택은 그 양자 사이의 어느 지점인가에 서있다가 사약(賜藥)을 받은 셈이다. 폭군과 그 먹잇감은 그래서 역사 다큐의 공동 주연(主演)이다. 


류근일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