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 8일. 장장 50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이 사망했다. 대한민국은 자유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찼다. 일부에선 향후 5년 이내에 통일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일성은 사망했지만 북한에서 그는 사실상 영생하고 있다. 유훈통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사망 후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표어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영생을 선전하기 위해 3년 상을 치른 1997년 7월까지 총 3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우상화와 신격화를 위한 각종 상징물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김일성의 집무실이었던 금수산의사당을 3단계로 나눠 진행된 금수산기념궁전 조성사업에만 2억 300만 달러가 넘는 돈이 들어갔다. 이 돈이면 북한주민들을 3년간 먹여 살릴 수 있다. 이와함께 김일성 시신관리비로 연간 200만 달러가 넘는 돈이 지출되고 있다. 90년대는 북한에게 있어 엄청난 아사자가 나왔던 힘들고 또 힘든 시기이지 않았던가.

 

각종 우상화물 건립도 꼬리를 물었다. 북한 전역에 친필비·현지지도사적비·표지비·명제비·현지교시판 등이 수도 없이 세워졌고, 1996년에는 김일성정치대학에 대원수복 차림의 김일성동상이 건립되기도 했다.

 

김일성 동상은 평양 만수대 언덕 위에 건립된 높이 23m의 대형동상을 비롯해 북한 전역에 수백 개가 뿌려졌다. 이후 사망한 김정일 동상과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다. 평양시내에만 무려 80개 이상의 동상이 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금수산기념궁전지구에는 김일성 영생탑이 건립됐다. 이 탑은 높이가 92.52m로서 1만7천여평방미터의 부지면적과 680평방미터의 건축면적에 560여개의 화강석으로 구성됐다. 영생탑은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 건립돼 있는데, 개성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군 및 리 소재지에 50여개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북한전역에는 김일성의 우상물들과 영생을 기원하는 상징물들이 깔려 있다. 김정은은 체제 유지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김일성, 김정일을 거의 전설화, 혹은 종교화 했다. 부조리가 가득 찬 북한이 아직도 붕괴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중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매년 국가기념일이면 전국 각지에 건립된 김일성의 동상을 찾아 헌화하고 그의 생전 업적들 되돌아 본다. 그 방문행렬이 명절때면 줄을 잇는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영향력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북한에게는 아직도 김일성·김정일 동상 건립이 모든 일에 있어 최우선 사업이다. 그렇게 본다면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위대성을 선전하기 위해 수많은 주민들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그 힘을 알고 있기에 제2천안함을 비롯해 연평도 포격과 같은 강도 높은 무력도발이 벌어진다면 김일성 부자의 동상을 정밀 타격할 계획이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국방부에서 북한 동상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를 부인했지만 충분히 신빙성 있는 얘기라는 분석들이 많았다.

 

최소한 이런 풍문을 통해서라도 체제 유지용 동상의 파괴는 북한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김일성 동상의 파괴는 사실 북한에게는 굉장히 큰 상징성을 띠게 될 것이다. 우상화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온 게 정설이라고 본다면 북한 주민들은 파괴된 동상을 발견하게 됐을 때 큰 틀이 부숴지는 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신격화의 정신을 깰 수 있고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이슈가 될 것임이 확실하다.

 

북한에서 최고로 신성하게 대접받는 김씨일가의 동상과 초상화 들이 일시에 불타오른다면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정신적 지주가 무너지며 북한 사회에는 일대 혼란이 발생할 것이며, 쿠데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부는 이를 보며 북한 붕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며, 실제로 반감을 갖고 있던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확신을 갖고 움직이게 될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절대로 막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지난해 여름 북한은 ‘동까모’라는 한국의 조직이 동상을 파괴하려다 적발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동상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 북한의 주장이 정말인지 아닌지를 떠나 북한의 주요 사적지 등의 탑과 동상들의 파손이 계속되고 있는 건 사실.

 

그렇다면 북한은 ‘동까모’를 핑계로 북한 내부에서 발생하는 반발세력의 동상 파괴를 막으려는 게 아니었을까. 다시말해 내부에서 북한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이 동상을 까부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한 명분으로 ‘동까모’를 내세운 게 아닐까.

 

어쨌든 북한 우상화의 대표 상징물이자 북한의 이미지 정치, 세습 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게 김일성의 망령이다.

 

6.25를 일으켜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그 희대의 괴두가 죽어서도 한민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김일성의 망령은 유훈이 되어 갈라선 남북을 다시 합치지 못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장해물이 됐고, 잘못된 체제를 유지해 북한 주민들을 가두고 고문하는 악의 상징이 됐다. 주민들은 먹을 것은 물론 정신마저 빼앗긴 채 헐벗고 굶주려 간다.

 

북한 주민들은 알고 있을까. 민족을 철천지원수로 만들어 싸우게 하고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자유도 주지 않은,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악’을 자신들이 신처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김승근 편집장 hem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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