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오는 6월 23일은 ‘선박공업절’이다. 김일성이 1948년 6월 23일 남포조선소연합기업소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최초의 철선 신흥호를 건조했다는 이날을 북한은 1988년 ‘선박기념절’로 제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북한의 선반 건조능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수십곳의 조선소가 있으나 한국에서 소형으로 취급되고 있는 2만5천톤급 선박의 설계 경험이 아직 없다는 점에서도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1만톤급 이상을 대형선박으로 분류하는 북한이 지금까지 만든 선박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겨우 2만톤급이다.

 

우리의 조선소들이 30만톤급에 육박하는 대형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얼마나 차이가 큰 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대형 화물선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으나 다른 산업부문과 마찬가지로 기술 및 시설·외화부족 등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북한은 예전부터 조선소 건설을 우리에게 강력히 요청해 왔다. 특히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정권은 강력한 햇볕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구체화된 안까지 나왔었다.

 

이명박 정부이후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결국 양국관계가 얼어붙었고 조선소 건설사업은 전면 중단됐다. 그 외에도 애로사항은 많았지만 북한은 계획초기부터 앞장서 협력할 뜻을 밝히긴 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그토록 조선소 건설을 요구할까.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설계능력이 있으며, 수출로 따지면 세계 1위다. 중국에게 최근 고전하고 있기는 해도 여전히 세계 1, 2위를 논하는 수준임은 아무도 의심하지 못한다. 그렇다. 북한은 우리의 세계적 조선업 기술을 탐낸 것이다.

 

게다가 노동집약산업인 조선업은 노동력이 넘쳐나는 북한에게 있어서 굉장히 탐나는 산업일 것이다.

 

동시에 많은 외화를 벌어올 수 있는 알짜 산업이라 북한이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 했다.

 

하지만 조선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액수의 설비 투자와 사회간접자본투자가 필요하다. 북한이 우리에게 ‘통 큰 투자’를 요구했던 이유다.

 

노무현 정권 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선박블록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도 몇가지 조건이 맞지 않으면 북한에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 조건은 첫째 전기였다. 조선업의 대부분은 용접으로 질 높은 용접을 하려면 고급전기가 공급돼야 한다. 주파수와 전압이 불안정한 북한 전기로는 그런 용접을 할 수 없다는 것. 당시 한국전력은 어떻게든 전력을 공급해 주기로 했었다. 근처에 발전소를 세우는 게 아닌 동해안에서 휴전선을 거쳐 선로를 설치해 전기를 대겠다는 구상이었다고 한다.

 

둘째, 용접에는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하다. 현대중공업, 대우해양조선, 삼성중공업 등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업체들의 저력은 바로 숙련된 기술자들이다. 선박용접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 북한의 용접공들을 하루이틀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북한에 훈련소를 세워 가르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으니 선박블록 공장이든, 조선소를 하든 북한 노동자들을 한국에 데려와서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셋째는 통행, 통신, 통관. 이른 바 3통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공정 하나하나마다 품질관리와 검증이 필요하다. 이곳 직원들이 원하는 때에 언제든 북한의 조선소를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선박건조를 의뢰한 선주들이 선박의 각 공정마다 감리를 해야 한다. 이들의 자유로운 통행이 보장돼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통관에 차질이 있으면 곤란하다. 블록 하나가 못 들어오면 선박 제작의 모든 공정이 중단되기 때문.

 

결국 고급전기 확보, 북한 기술자 교육, 3통 허용이 이뤄져야만 가능했다는 얘기다.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어쨌든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며 그렇게 고려됐던 조선소 산업은 물 건너갔다.

 

그때 막대한 투자로 북한에 막대한 설비를 구축해 놓았다면, 그리고 우리의 앞선 기술력을 전수해주며 북한을 훈련시켜 놓았다면, 또 그들의 행정적 인프라를 개선시켜 놓았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북한에게 또 하나의 볼모를 안겨준 셈이 됐을 것이다. 지금 금강산 관광 산업은 물론 개성공단이 어떻게 됐나. 북한은 일방적인 폐쇄도 부족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도구로 ‘경협’을 이용한 것이다.

 

지금 개성공단을 둘러싼 북한의 오만과 기만을 다 보고 있지 않은가. 맘 내키는 대로 근로자들을 전원 철수시켰고, 재가동을 전제로 우리에게 딜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 대규모 조선시설을 지어줬다면 우리는 그들의 막가파식 비위를 맞춰주느라 고생했거나, 혹은 진작에 빼앗겼을 것이다. 또 언제가 됐든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발전시설을 마련해 가동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투자비는 정부가 우리의 세금으로 보상해주고 있었을 수도 있으며, 투자한 회사는 그 손실 탓에 휘청이고 있었을 수도 있다.

 

북한 김정일은 생전 북한의 조선소들을 자주 시찰했다고 한다. 그만큼 조선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한이 오늘날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게 중공업을 통한 것임을 잘 알기에 그렇다.

 

선박공업절에 북한은 무엇을 생각할까. 우리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인 중공업산업 육성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을까. 아니면 남한에 사기를 쳐서 빼앗을 수 있었던 대규모 설비시설과 기술력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우리는 북한의 선박공업절을 지켜보며 북한의 실체를 모르고 그들을 막연히 믿었던 그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두 번다시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함을 떠올려야 한다.

 

김승근 편집장 hem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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