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도의 긴장국면을 해소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해 조(북한)·미 당국 사이에 고위급 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회담 장소와 시일은 미국이 편한대로 정하면 될 것이다.”

 

남북회담이 무산된지 5일만에 북한이 미국에 급작스럽게 내놓은 회담 제안이다. 회담을 제안하며 ‘핵 없는 세계 건설’까지 제시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비핵화 없이는 대화도 없다는 미국의 확고한 원칙을 알고 있는 북한이 내놓은 최후의 카드인 셈.

 

하지만 불과 5일전에 우리와의 회담을 고작 참석자 ‘격’이 안 맞다는 이유로 무산시킨 북한이다. 당시 금강산, 개성공단 정상화 및 이산가족 상봉, 남북 대화채널까지 내놓았지만 그들은 애시당초 대화를 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게 확실해졌다.

 

그런 북한이 미국에게 ‘핵 포기’를 논한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불과 5일전에 우리에게 써 먹었던 사기를 그대로 미국에게 치려고 한다는 거 자체가 코미디다.

 

더 재밌는 얘기를 해볼까. 북한은 회담을 제안한 그날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수령님(김일성)과 우리 장군님(김정일)의 유훈이며 우리 당과 국가와 천만군민이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 했다.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다?

 

그러면서도 “핵 보유국으로서 우리의 당당한 지위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신들이 핵을 이미 보유했음을 미국에 강조해 핵보유국임을 확실히하기 위함인가. 핵을 보유는 했지만 제거할 수도 있다는 제안으로 봐야하는 건가. 아니면 상황에 따라 앞과 뒤가 전혀 달라지는 충동적 선전 문구로 봐야 할까.

 

북한의 돌발적인 회담제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북한은 오바마와 시진핑이 미국에서 만남을 가질 때 우리에게 대화 제스쳐를 취했지만 중국이 북한을 팽하는 발언과 미국과 손을 잡는 모습을 본 직후 우리에게 회담 무산을 알려왔다. 북한의 태도변화가 중국을 붙잡아보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우리보다 중국의 눈치를 더 봤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북한은 지금 중국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수 있다. ‘중국이 우리를 내팽개치려 한다면 우리가 미국과 직접 대화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중국으로선 한때 같은 편이었던 막나가는 망나니 하나가 자신들을 가장 크게 좌우할 수 있는 미국에게 가서 자신들의 어두운 모습 등을 모두 풀어내며 해코지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의 메시지가 의도대로만 먹힌다면 중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비핵화 압박의 수위가 약해지거나 다시 중립적인 모습으로 돌아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 대국 관계를 천명하며 미국과 본격적인 G2를 선언한 중국이 콧방귀나 뀔까.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악의 축’으로 거듭나는 북한을 내치면서 자신들의 명분과 위상을 더 높이려 할 수도 있다.

 

북한의 이번 회담 제안 의도 중 또 하나는 ‘한국을 건너뛰고 미국과 바로 대화하겠다’ 일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 그동안 줄곧 유지해 온 노선으로, 격이 낮은 한국이 아닌 실질적인 협상자 미국과 북한간의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태도다. 북한은 과거 끊임없이 이같은 주장을 펼치며 우리를 무시하는 처사를 고수해 왔다.

 

자존심만 남은 북한으로선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이같은 제안을 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자폭탄이 될 것이기에 설령 있다고 해도 결국 써먹을 리 없는 핵폭탄. 북한으로선 자신들이 핵을 갖고는 있지만 폐기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을 빌미로 많은 협상이 가능할 것이기에 그렇다.

 

이제 곧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을 만나러 중국으로 간다. 북한의 김정은이 얼마나 초조할지, 얼마나 불안할 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그들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게 바로 이같은 북한의 돌발행동들이다. 결국 한없이 가벼워질 뿐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찌됐든 우리 정부는 북한이 앞뒤 다른 말들을 뱉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동안 그들의 거짓투성이의 언사와 만행을 열심히 설명하고 다녀야 한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중국은 그런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북한을 옹호해 주기 싫어질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이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적극 지지한다며 술잔을 높이 드는 날. 북한은 자신들을 옭아매는 사슬이 완성됐음을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은 우리와 더 가까워졌으며, 북한의 유일한 우군이던 중국은 등을 돌려 우리와 손을 잡았다. 국제사회 모두가 우리와 공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그들이 우리를 우습게 알고 기만과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엎드려 싹싹 빌 날이 올 것이다. 머지않았다.

 

보수논객 조갑제 대표는 “북한은 핵을 포기해도 망하고, 개혁·개방을 해도 망한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대로라면 북한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태다. 세계에 맞서며 핵 개발을 계속하기에도,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해 개혁·개방을 할 수도 없다면 그 골방에서 그대로 붕괴하는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북한의 김정은은 지금 제대로 시험대에 올랐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사슬에 둘러쌓여 상식을 벗어난 북한의 이상 행보를 지켜보라. 우리는 지금 북한 붕괴의 전주곡을 듣고 있다.

 

김승근 편집장 hemo@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