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개인이나 단체 간에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상호 경쟁하거나 해를 끼치고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6.25 동란이 끝난 50년대에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자본, 장비, 기술면에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시공한 토목공사와 건축공사의 질이 떨어지고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장충단 체육관, 미국 대사관 그리고 문화부 청사건물은 우리 업체가 시공하지 못하고 당시에 아시아에서 선진국이던 필리핀 업체가 시공한 것이다.

주한 미군이 발주하는 공사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것이었다. 하지만 공사 발주와 시공, 감독이 미국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미군 공사를 수주하여 시공하는 과정에서 우리 업체들은 미국 기술자로부터 선진국 방식을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입찰 의향서의 작성 및 공사비 견적 방법을 알게 되었고, 설계도면 및 공사시방서의 설명을 영어로 일일이 듣는 과정에서 국제수준의 공사 수주 와 시공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발주처에서는 공사계획의 수립에 앞서 기본조사와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하게 되었다. 업체는 공사설계와 공사 시방서에 따라 공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엄격한 감리를 받게 된 것이다.

60년대 중반 월남에 국군을 파견하면서 미 육군 산하 공병단이 우리 업체에게 각종공사를 우선적으로 발주하였다. 이는 우리 업체가 미8군 공사를 시공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기술과 시공 경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업체는 월남뿐만 아니라 태국, 괌 같은 여러 지역에 진출할 수 있었다.

70년 대 중반 월남 전쟁이 종료되자 주로 미군사령부에서 발주하는 건설공사에 참여했던 현대건설, 삼환기업, 대림산업, 공영토건 같은 업체들이 중동 건설시장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중 삼환기업이 73년에 맨 먼저 사우디에 진출하였다.

미 공병단, 발주공사 한국에 밀어줘

사우디 정부는 73년 제1차 유가파동으로 엄청난 오일달러가 들어오게 되자 이 돈으로 자립경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간접자본과 더불어 각종 국방시설을 크게 늘리게 되었다. 미국과 각별한 우호관계에 있는 사우디는 양국 정부 사이에 맺은 협정에 의해 미 육군 산하의 지중해 공병단이 모든 군사시설 공사를 떠맡아 관리하도록 하였다. 1차적으로 170억 달러에 달하는 많은 공사였다.

한국군이 월남전에서 미군과 함께 참전하였던 관계로 미군들이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어 남달리 우호적이었다. 특히 미 공병단 사우디 주재 사령관인 그레이 대령은 수시로 우리와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매우 협조적이어서 마음이 든든하였다.

우리 업체가 초창기 도로공사에서 손해를 보며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이러한 인연 때문인지 천만다행으로 미 공병단이 발주하는 공사를 많이 수주할 수 있어 사우디에서 확고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미 공병단 발주공사는 시공감리가 엄격한 반면에 수익성이 좋고 물가상승 시 공사비를 증액시켜 주는 것 같은 좋은 조건이어서 안정성이 보장되어 있었다. 내가 재임한 5년간에 우리 업체가 45개의 공사를 수주하였으며 공사 금액은 17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와 더불어 국방항공성으로부터 56건의 공사를 27억 달러에 수주하여 모두 44억 달러의 실적을 올리기도 했던 것이다.

미국과 한국과의 우호적인 동맹관계가 우리 업체와 미 공병단과의 끈끈한 인연으로 이어져, 우리 업체가 사우디에서 가장 많은 공사를 따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허재영 전 건설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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