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최근 출간한 저서 “전략적 비전: 미국과 글로벌 파워의 위기(Strategic Vision: America and the Crisis of Global Power)”라는 책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1세기 국제질서를 전망한 이 저서에서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혼란스러운 시대가 올 것으로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쇠퇴로 곤경에 처할 나라들로 한국, 일본, 대만, 이스라엘 등을 들고 한국은 일본과 협력하거나 독자 핵무장을 결행하여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할지 모르며, 그렇지 않으면 중국에 안보를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한국은 중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한미동맹을 축소해야 할지 모르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은 것을 의미하는 내용들입니다.

정치군사문제엔 냉혹한 중국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급부상이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부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태 시 북한을 두둔하는 중국을 보면서 북한이 중국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혈맹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으며, 한국은 중국에게 있어 정냉경열(政冷經熱)의 상대, 즉 경제교류는 활발하게 하되 정치군사 문제는 냉정하게 하는 상대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중국을 보면서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아예 한미동맹을 버리고 중국의 영향권 내로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며, 반대로 미일과 협력하여 중국을 포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양쪽 다 틀렸습니다. 과거 중국대륙으로부터 무수한 침략을 받았던 우리가 중국 영향권 내로 들어간다는 것은 미래 대한민국의 생존을 포기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중국은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지만 적시대해서도 안 될 나라입니다.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기는 했지만, GDP는 5조 9,000억 달러로 미국의 1/3 수준이며 1인당 GDP는 미국의 1/10 수준입니다. 덩치를 자랑하지만 영토의 40%를 차지하는 신장성과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는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의 영역입니다. 민주화 열망, 농촌 유휴 노동력의 빈곤층화, 분리주의 운동, 소수민족 문제, 환경문제 등 시한폭탄 이슈들도 많습니다. 즉, 중국이 지금의 속도로 무한정 성장하여 ‘괴물’이 될 것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세계 2위의 GDP, 3조 달러의 외환보유고, 8,000억 달러가 넘는 미국 채권 보유, 2,600억 달러의 대미 무역흑자 등은 중국의 영향력을 나타내기에 충분합니다. 군사적으로도 하루가 다르게 강대국의 모습을 갖추어나가고 있습니다. 국방비는 5년간 평균 증가율 약 20%를 기록하면서 1,000억 달러에 육박하며, 핵무기, 항공모함, 스텔스 전투기, 우주무기 등 각종 군사력에서 미국의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의 교훈 되새겨야

이런 중국을 옆에 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제질서를 존중하고 주변과 화친하는 중국이 될지 아니면 눈알을 부라리면서 주변국을 호령하고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이 될지 알지 못하는 현 단계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연미통중(聯美通中)’ 또는 ‘연미협중(聯美協中)’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비적대적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기반이 있습니다. 미국과는 60년 전통의 혈맹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과는 연 2,500억 달러의 무역고와 700만 명의 인적교류로 대변되는 강력한 경제동반자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반을 활용하여 연미통중의 생존외교를 펼쳐나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한국이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지 못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20세기 초반 독일과 소련이 경쟁하던 시기 핀란드는 양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전문가들은 향후 동북아에서의 한국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돌고래급’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 머물 것이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이 친구로 삼기를 원하는 수준의 중강대국(中强大國)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 문화 파워 등 각 분야의 성장은 지속되어야 하며, 통일을 향한 발걸음도 재촉해야 합니다. 국내적으로는 분배정의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형적인 성장을 멈출 수도 없는 것이 우리가 처한 동북아 환경인 것입니다. 브레진스키의 저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분명히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김태우<통일연구원 원장> twitter: @ktwktw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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