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일 논설위원

‘참, 후진 구석이 있네’

정의당 국회의원 류호정의 ‘멜빵바지’ 기사를 보고 먼저 든 생각이다. 

기사는 “현직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 멜빵바지를 입고 등장한 것은 파격이라는 평이 나온다”고 했다.

누구의 평일까? 국회의원들? 국회 사무처 작원들? 국회의원 보좌진들? 같은 기자들? 누군지는 밝히지 않는다. 밝힐 필요도 없지만. 극히 제한적이고 한정된 그러면서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샘플로 일반화를 시도한 거는 아닌가싶다.

18년 전 유시민이 백바지에 티셔츠로 유사한 반향을 불러온 적이 있다. 별일도 아니었건만. 사고의 후퇴인가? 의식의 르네상스인가?

기사에 달린 댓글이 짧은 시간에 2천 개가 넘는다. 적지 않은 수다. 관종이다. 예의 없다. 일이나 잘해. 부정적인 게 대다수다. 류호정이 싫은 건지 복장이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다.

이 기사의 의도는 뭘까? 멜빵바지 입지 마라는 건가. 류호정이 별일 한다는 거 알리려고? 그거라면 지난번에 함 했자나.

TV를 켜면 복장의 현란함과 민망함이 난리도 아니다. 민망하다 여기면 꼰대란다. 꼰대는 늘 부정적이다. 시청자 모니터 프로에 가끔 복장에 관한 지적이 있기는 하나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다.

더해 류호정의 멜빵바지와 비교하면, 아니 비교할 수준도 아니다. 그럼 TV에나 나가지 국회의원은 왜 해? 그런 뜻이 아니지 않은가. 일반 국민의 사고와 국회 내의 사고 간의 거리를 얘기하는 거다.

학자연(學者然)하는 사람은 왕왕 외국 유명 학자의 이론이나 생각, 말씀을 빌려 자신 주장의 지원군(支援軍)으로 삼는다. 필자연(筆者然)하는 사람도 매한가지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외국에 동일한 사례가 있는지 우선 확인해 본다.

잘하는 짓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외국 거 정말 좋아한다. 허나 사고방식만큼은 쉽게 베껴오기를 꺼린다. 복장에 관한 서구인들의 자유분방한 사고,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잘 안다. 어디 복장뿐이랴.

옷에 관한 외국 사람의 사고를 좇자는 게 아니다. 좀 너그러워지자는 거다. 틀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거다. 격식에 너무 목메지 말자는 거다.

공무원은 넥타이를 매야 한다 여성의원은 검정치마에 하얀 셔츠를 입어야 한다 입사 면접을 볼 때는 정장을 입어야 한다 등등 참 후진 생각 아닌가.

하나만 짚어 보자. 정장을 권하는 면접관의 의도는 뭘까? 예의 바른 사람을 찾기 위해서? 말 잘 들을 것 같은 사람을 고르기 위해서?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 요즘은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한 시대 아닌가.

면접관은 그런 권유를 한 적이 없다고요? 쩝...! 자유로운 복장이면 불이익을 받을 거라고 지레짐작을 하는 청년 수험생이 잘못했네요.

복장이 생각을 지배한다면 과장일까? 사람마다 다를 거다. 허나 자유로운 복장에서 보다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가설은 영 거짓은 아니다.

혹자는 말한다. 그럼 장례식장에도 빨간 드레스 입고 가지. 하. 이렇게 나오면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는 거다. 상식이라는 게 있는데. 요즘 암만 상식의 폭이 널을 뛴다하지만

이런 거로 논란 그만하자. 최소한 기사는 그만 쓰자. 품격 떨어진다. 류호정은 이런 거 보다는 ‘대리 게임’ ‘보좌진 부당해고’ 문제로 치열하게 논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싶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편한 옷을 입고 직장에 다닐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준석의 노타이는 참신이고 류호정의 멜빵은 관종이라니.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둘 다 자신이 편하고 원하는 옷을 입었을 뿐인데.

괜한 거로 사람 관종 만들지 말자. 그 정도 의식 수준은 이제 되지 않았나? 이제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도 될 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2000년대 초에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토요일은 반공일이다. 법적으로 오후 1시까지 근무다. 대개는 12시에 점심을 먹고 퇴근이다(뭐 한다고 1시까지인지 당시엔 참 이해가 안 됐다).

아무튼 사무실 직원들의 요청과 의원의 승인 하에 토요일은 직원들에게 청바지가 허용(?)됐다.(그런 시대였다) 많은 우려가 있었다. 민원인이 보고 예의 없다고 하지 않을까? 외부인의 눈에 안 좋게 보이지는 않을까?

“국회가 너무 어려워서 괜히 주눅이 들었었는데 청바지를 입고 있는 보좌 직원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한결 말하기가 편해졌다” 찾아 온 민원인이 돌아가면서 내게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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