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일 논설위원

‘인사청문회’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몇 있다.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병역기피, 다운계약서 등등.

제도가 2000년 처음 시행되었으니 20년이 훌쩍 지났다. 초창기에는 참 볼 만 했다. 가관(可觀)이란 얘기다. 고위공직자가 되시려는 님들 거지반은 예의 자격(?)들을 한두 개 이상 소장(所藏)하고 무대에 등장하셨다. 어쩜 그럴 수 있는지. 이런 아름답지 않은 이력 때문에, 떳떳하지 못한 삶의 궤적 때문에 개망신을 떨고 치도곤을 당해야 했다. 급기야는 망신살만 한껏 뻗치고 중도 하차 하는 님들이 속출했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김첨지감투가 아니 되었으니 다행스럽기도 했고.  

공허한 우스갯소리가 들렸다. 장관님이 되기 위해서는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병역기피, 다운계약 중에 한두 개는 자격증 소지하듯 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도덕 교사나 윤리 선생을 뽑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근데 도덕성 결핍으로 난타 당하면서도 꾸역꾸역 장관자리에 오른 사람 중에, ‘아주 잘했다’는 평을 받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그 말도 영...아무튼 설왕설래에 갑론을박이 더해 졌지만 일보(一步)의 나아짐도 없다.

엊그제 5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처음 그 대상으로 한 것이 2005년이었으니 1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많은 사례들이 교훈으로 전달되었다. 고위공직자가 되고 싶으면 도덕적으로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는 지혜 아닌 지혜를 TV 생중계가 알려줬다. 근데 이건 뭐. 경험을 교훈으로 삼지 못한 님들은 아둔함을 또 드러냈다.

임혜숙 과기부 장관 후보자 ▲공금으로 지원되는 해외학회에 가족 동반하기 ▲13차례의 위장전입 ▲아파트 매매 다운계약서 작성  ▲자녀의 이중국적 ▲종합소득세 미납 ▲제자 논문에 배우자 이름 18차례 끼워넣기 등의 의혹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배우자의 총 1250여 점 도자기 밀수 및 세금 탈루 의혹 ▲관세법 위반 혐의 등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세종시 특별공급 아파트 재테크 ▲위장전입 ▲부인의 절도 ▲차남의 실업급여 부정수급 등의 의혹

이 분들을 보면서, 과연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인지를 캐묻는 것은 이미 의미 없다. 삼단 서랍장 같은 구호는 너덜너덜 빛바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부적격이다’ ‘습관적 발목잡기다’ 매양 하는 여야의 다툼 역시 부질없다. 숱한 의혹은 국민의 눈높이를 이미 벗어났고, 더하여 “관행이었다” “도자기 1250점은 집에서 쓸 목적이었다”는 후보들의 구차한 변명은 국민의 부아를 돋우는데 ‘불에 기름 격’이었으니. 점입가경(漸入佳境), ‘퀴리 부인’ 운운은 지나가는 소를 웃게 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 고위공직자 원천 배제 7대 원칙을 발표했는데도 이렇다. 그렇다고 남다르게 막돼먹은 정권인가? 그렇지도 않다. 박근혜, 이명박 정권의 상황도 도긴개긴이다. 순위를 매긴다면 삼자(三者)가 박빙이다.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우는소리가 매번 나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후보자의 도덕적 검증은 비공개로”하자고 장이야 하니 문 대통령이 “반드시 개선됐으면 좋겠다”며 멍이야 했다는 보도가 있다. 제도 탓하지 말자. 꼭 모자란 사람들이 남 탓한다. 필요에 따라 제도를 고치기 시작하면 원칙과 취지는 손상되고, 그 놈은 산으로 가 있기 십상이다.  

제도가 유익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여러 사람들이 노력해 보자. 우선 제발 부탁이다.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여러 점 부끄러우신 게 있는 님들, 혹여 고위공직을 제안 받더라도 고사(固辭)의 미덕(美德)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모쪼록 국민 보건을 위해서 말이다. 님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과 불쾌, 이상한(?) 박탈감에 분노까지 느끼니깐. 님들의 아이들도 민망할 터인데. 스트레스가 어찌되는지는 알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까운 제안이다 이걸 놓치면 화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싶으면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떤가? “장관 말고 차관은 안 되나요...?”

탈탈 터는 도덕성 검증으로 등용할 인물이 없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인재풀이 작으니 그럴 수밖에. 내 편에서만 사람을 찾으니 그럴 수밖에. 입맛에 꼭 맞는 사람만을 찾으니 그럴 수밖에.

인물을 이편에서도 골라 보고, 저편에서도 살펴봐야 한다. 네 편에서도 일삼아 찾아보면 상황은 좋아질 거다. 암, 훨씬 나아질 거다. 대통령은 어느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다. 왜 꼭 내 편만을 고집하는가? 전임 대통령들이 그리하여 하나같이 낭패를 본 사실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탕평책(蕩平策).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중학생도 알 수 있는 훌륭한 정책이다. 그 많은 청와대 참모 중에 이를 건의하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면 대통령의 인사가 잘못된 거다. 건의를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협량(狹量)인 거다. 이래저래 대통령 탓이다.

“무안주기식 청문회로는 정말 좋은 인재를 발탁하기 어렵다”는 푸념은, 네 편에서 사람을 찾아 본 그 이후에나 할 말이다.  

황정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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