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세대여, 다음 페이지의 조사(弔詞)를 읽어다오.

포스코를 설립한 박태준(朴泰俊)회장의 장례식을 치렀다-12월 17일.
지금 ‘안철수 신드롬’을 앓고 있는 산업화 3세대(2040세대)는 산업화 1세대가 뚫고 일어선 그 ‘절대적 절망’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절망’의 역사를 읽지 못하면 오늘이라는 실존을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일제가 남긴 신생국 최고의 산업화 조건을 가지고도 세계 최고의 빈곤국을 만든 며칠 전 죽은 김정일과 그 훨씬 전에 죽은 김일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2040세대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누구보다 그 실존에 치열해야 한다.

나는 박태준 회장의 서거와 함께 산업화 1세대의 종언을 보며 산천이 텅 비고 하늘과 땅이 모두 공허함을 느낀다. 그 텅 빈 그 공허함을 메울 세대는 바로 2040세대다. 천지에 기운을 일으키고 다시 산천을 가득 차게 할 사람은 세대 상 차이로 오직 그들밖에 없다.

지금 2040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심지어 절망하고 있지만 산업화 1세대에 비하면, 비교조차도 안 되는 유리한 조건 유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1세대의 좌절과 절망이 ‘절대적’이었다면 2040세대의 그것은 ‘상대적’이다. 그만큼 2040세대는 딛고 나아갈 터전이 있고, 밟고 올라갈 플랫폼(platform)이 있다는 말이다.

다음의 조사는 첫머리부터가 거인(巨人)이며 위인(偉人)으로 시작된다. 그는 확실히 산업화 1세대 중에서도 거인이며 위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갔다는 것은 산업화 1세대들이 만든 ‘대성취’의 성공모델도 이미 그 효력이 다 되었다는 신호다.

어떤 성공모델도 한세대 이상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산업화 1세대의 그 성공모델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대체의 몫은 2040세대의 것이다. 그 어느 세대보다 2040세대가 새로운 성취 성공의 모델을 만들어 새 시대를 열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도 탓할 수 없고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1세대 할아버지들이 그러했듯 절대로 ‘나라에 기대지 말라’ ‘나라 믿지도 말라’ ‘하늘과 땅의 주인은 바로 나다’ ‘나만이 해낼 수 있다’-그 의지 그 신념 그 정신만이 새로운 오늘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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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눈을 감으셨나요

 

 

거인(巨人)은 갔다. 위인(偉人)도 갔다. 그가 가면서 이 둘이 함께 갔다. 산천이 모두 빈 것만 같고 하늘도 땅도 공허하다.

 

그가 거인인 것은 철강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위인인 것은 교육때문만도 아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 더구나 용광로 구경조차도 못해본 나라에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를 만들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는 확실히 거인이다. 교육열은 치열하되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나라, 교육 선진국이니 교육의 세계화는 꿈도 못 꾸던 시절에 세계를 겨냥하는 교육의식과 교육방법론을 이 땅에 처음 열어준 것만으로도 그는 명확히 스승이고 위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는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철학과 의지, 신념을 주고 갔다. 모두가 절망하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단념하고 모두가 사익만 쫓던 때에 그는 ‘절대적 절망은 없다’ ‘절대적 불가능은 없다’ ‘절대적 사익은 없다’는 가치를 실현했다. 절대는 상대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고 일체의 비교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것은 극한 상황이고 끝나는 상태다. 천길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날은 그 천길 벼랑 끝에 서 있는 극한의 절망, 극한에 선 불가능, 극한까지 가는 빈곤 속에 살았다.

 

그런 절대적인 절망에서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높이 솟아오를 수 있었는가. 그런 절대적인 불가능에서 어떻게 오늘의 대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는가. 그런 절대적인 빈곤, 그 빈곤이 가져오는 절대적인 사익(私益) 추구에서 어떻게 우리 모두 이익으로서의 공(公)의 세계를 세울 수 있었는가. 그 ‘절대적 상황’의 극복, 그렇게 해서 전혀 새롭고도 다른 현실을 창조해 낸 그의 철학과 의지 신념,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최고 최대의 유산이다. 그 유산으로 해서 그는 거인이면서 거인 이상이고, 위인이면서 위인 이상의 존재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를 만든 큰 별들은 누구인가. 지난 60년, 우리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우리의 긴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국가다운 국가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이 엄청난 역사의 건설자, 이 새로운 나라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국민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국민도 유능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우매한 대중으로 전락한다. 그것은 우리보다 앞서 선진화를 실현하고 경험한 나라들이 보여준 사례다. 어떤 지도자를 만났느냐가 어떤 국가 어떤 역사를 만드느냐를 결정한다.

 

우리는 지난 60년의 현대사에서 다섯 사람의 유능한 지도자를 만났다. 그 만남은 대한민국의 행운이고, 국민으로서 우리의 축복이었다. 그 지도자는 정치인으로 이승만 박정희이고 경제인으로는 이병철 정주영이며, 또 다른 범주로써 박태준이다. 박태준은 정치?경제 그 어느 카테고리에도 '꼭 끼어' 넣기 어려운 위치의 지도자이다. 정확히 자리매김하면 독보적 위치다.

 

지난 60년의 우리 역사가 ‘기적’의 역사이듯이, 박태준의 포스코 역시 그 탄생부터가 ‘기적의 탄생’이고, ‘기적의 존립’ ‘기적의 발전’이었다. 그 ‘기적’의 뒤에는 박정희라는 페이트론(patron)이 있었다. 그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박태준 없어서도 박정희가 그것을 해낼 수 있었을까. 박태준을 찾아낸 박정희의 형안(炯眼)은 위대했다. 그러나 아무리 형안이 빛났어도 그 형안만으로 또 다른 박태준을 찾아낼 수 있을까. 박태준 역시 박정희를 만나지 않고서도 그 같은 ‘대 성취’가 가능했을까.

 

박정희와 박태준, 그 두 사람의 만남은 우리 현대사의 '숙명'이고, 우리 국민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행운’이었다. 그 행운은 ‘짧은 인생 영원한 조국에’라는 두 사람의 의지와 신념 조국애의 소산이다. 두 사람만큼 이해(利害)를 초극해 조국애라는 가치를 내재화(內在化)하는 지도자를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을까.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오매불망하는 그 나라를 두고.

송복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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