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로서 저항운동을 하다가 4년간 옥살이한 그는 無血혁명으로 공산당을 몰아낸 뒤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진실과 사랑을 강조하면서 보복을 금지시켰다]


줄담배를 즐겨 피우던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사망하였다. 향년 75세. 극작가로서 공산당의 압제에 저항하였던 그는 4년간 감옥 생활을 하였고, 수 없이 연행되었다. 1989년 초에도 넉 달간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해 11월 東歐 공산정권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가운데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을 '벨벳 혁명'이라 불리는 無血혁명으로 몰아내는 데 主役이 되었다.

그 직후 대통령으로 추대된 그는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조용히 분리하는 과정도 관리하였다. 그는 늘 "공산당의 거짓과 증오를 우리의 진실과 사랑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복수심을 억제하자고 국민들을 설득하였다. 그는 위대한 知性이었다. 그런 그가 체제전환기를 관리하였으므로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었다.

그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에는 비판적이었고, 북한人權문제에는 관심이 많았다. 이 공로로 서울 평화상도 받았다. 하벨은, 몇 년 전 본데비크 전 노르웨이 수상 및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즐과 공동명의의 기고문(뉴욕타임스)을 발표하였다. 북한의 참혹한 인권탄압을 중단시키기 위해 유엔안보리가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진짜 惡'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서 지난 30년간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약40만 명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필자들은, 한 국가가 국민들의 인권을 파괴할 때는 유엔이 개입할 권리가 있다면서 첫 단계로서 유엔안보리가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는 對北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만, 1단계 조치에선 제재나 응징을 조건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체코는 1618년엔 30년간 종교전쟁의 발발지이고, 1938년엔 뮌헨 협정의 희생물이 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원인이 되었다. 1968년에는 공산정권下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가 소련군의 개입으로 좌절되었다.

1989년 11월17일 공산당 지배下의 체코 정부는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을 구타했다. 여기에 항의하는 시위가 프라하 한복판 바츨라프 광장에서 연일 계속되었다. 한때는 70만 명의 시위대가 이 광장을 메웠다. 1989년 11월24일 이 광장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국립박물관 발코니에 알렉산더 두브체크(1968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공산당 서기장)와 하벨(뒤에 대통령)이 나타나 공산당 정권 타도를 다짐했다. 공산정권은 즉시 정부를 인계하고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4년 상미회 여행단은 프라하의 메리오트 호텔에서 駐체코공화국 李浚熙 한국 대사를 모시고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李대사는 체코의 역사를 잘 해설해 주었는데, 그 핵심은 체코인들이 일찍부터 독일, 오스트리아와 소통하면서 西歐와 일체가 되어 움직였다는 점이었다. 이 나라는 독일-오스트리아의 게르만 문화권과 함께 발전해 왔기 때문에 슬라브的 후진성을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체코인들의 특징을 李대사는 「교양있고, 진지하고, 겸손하며, 잘 훈련ㆍ교육된 점」이라고 요약했다. 체코 사람들은 현명하고 똑똑한데도 어리숙한 척하기도 하면서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 간다고 했다. 무식하면서도 똑똑한 척하고,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지도층에 너무나 많은 한국의 사정과 퍽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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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스 포르만이란 감독의 이름을 몰라도 '아마데우스'(1984년), '뻐꾸기 둥지 위를 날다'(1975년)라는 영화는 아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영화사에 남을 만한 名作의 감독인 포르만은 체코 사람이다. 체코 사람들은 인구에 비하여 예술, 문학, 스포츠, 과학 부문에서 위대한 천재들을 유달리 많이 배출했다. 밀로스 포르만은 공산 체코 시절부터 영화를 만들다가 1968년 민주화 운동이 소련군 탱크에 의해서 압살되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1975년에 만든 잭 니콜슨 주연의 '뻐꾸기 둥지 위를 날다'는 다섯 개의 오스카상을 받았다.

정신병동이 무대이다. 1984년의 '아마데우스'는 여덟 개의 오스카상을 받았다. 울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생애를 경쟁자인 안토니오 살리에르의 눈을 통해서 그린 壯重한 영화이다. 살리에르는 음악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보통인 사람이다. 그는 천재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뒤 정신병에 걸려 말년을 수용소에서 보낸다. 여기서 만난 신부에게 털어놓는 회고담 형식의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대사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 정신병자 살리에르가 미소를 띠면서 하는 말이다. "나는 보통사람들의 챔피언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모차르트와 포르만 같은 천재를 만나 열등감을 느끼는 많은 보통사람들의 애환을 이해할 수 있다. 살리에르에게 동정이 가는 것은 그가 바로 보통사람들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화면은 온통 청동색이다.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18세기말의 비엔나 거리를 담은 화면인데 실제 촬영은 프라하에서 이뤄졌다. 그 이유에 대해서 포르만은 이렇게 말했다. "프라하는 보석과 같은 도시이지요. 카메라를 360도로 돌려도 현대의 흔적이 보이지 않거든요" 프라하는 15세기에 칼4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어 이 도시를 수도로 삼은 이후 근 600년간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쌓여가면서 만들어진 도시이다.

비엔나보다도 옛날 건물들이 더 집중되어 있다. 아마데우스를 찍기 위하여 세트를 많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아마데우스 영화에 나오는 골목과 다리와 성당건물을 프라하에 가면 현실에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영화속의 도시처럼 아름다운 프라하이다. 모차르트는 프라하에서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완성하여 初演했다는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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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히틀러가 뮌헨 회담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농락함으로써 체코의 독일인 거주지 슈테트란트를 점령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히틀러는 슈테트란트만 먹은 게 아니라 내친 김에 체코까지를 점령하여 보호령으로 삼고 슬로바키아는 괴뢰국으로 만들었다. 이래도 체코에서는 조직적인 저항이 없었다. 1945년 소련군이 동쪽에서 접근해오자 프라하 시민들이 봉기하였다.

프라하 시민들은 독일군과 협상하여 도시를 보존할 수 있었다. 독일군의 철수를 보장해주는 대신에 독일군은 도시를 파괴하지 않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버린 체코에서는 공산당이 그렇게 악독하게 굴지 않았다고 한다. 교양의 한 기준을 심각한 것을 조용히 처리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면 체코 사람들은 참으로 지성인들이다.

프라하 舊시가의 중심을 이루는 광장에는 종교개혁가 후스가 이단자로 몰려 화형을 당하는 동상이 있다. 체코 지식인 사회에서는 『후스냐 갈릴레오냐』하는 말이 있다. 후스처럼 지조를 지키면서 용감하게 죽을 것인가, 갈릴레오처럼 종교재판에선 항복을 하고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면서 자신의 일을 계속하여 후세를 기약할 것인가.

살아남아 인류의 공영에 이바지할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갈릴레오의 삶과 같은 것이 바로 프라하의 회색 知性이며 파란 많았던 역사에서 터득한 기술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역사적, 문화적 바탕에서 역사적 인물로 등장한 이가 하벨이었다. 살벌한 정치판에서도 知性이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實證한 이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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